내차 '급발진'하면 이제 보상받나?

머니투데이 박종진 기자 2009.10.01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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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업체 입증" 법원판결에 업계 긴장, 소보원 "명절 지나 상담 몰릴 듯"

자동차 급발진 사고에 대해 차량 결함 여부를 판매업체가 입증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오자 자동차 업계는 긴장 속에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당장 진행 중인 소송은 많지 않지만 유사 소송이 잇따를 수 있는데다 만일 급발진 책임이 업체에 있음이 법원에서 최종 인정된다면 브랜드 이미지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1일 국내 완성차 5개사 법무팀 등에 따르면 현재 소송 중인 급발진 관련 사건은 1심에 계류 중인 기아차 (105,600원 ▲2,100 +2.03%) 1건이 유일하다. 현대차 (250,500원 ▲4,500 +1.83%), GM대우, 르노삼성, 쌍용차 (5,500원 ▼150 -2.65%) 측은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이 없다고 밝혔다. 과거 소송이 벌어져 회사 측의 승소로 끝난 적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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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서울중앙지법이 운전자 조 모씨가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딜러)를 상대로 낸 소송에 대해 내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이 당장 영향을 미칠 소송은 많지 않다는 뜻이다. 법원은 "조 씨의 과실로 사고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급발진 사고의 손해배상 책임, 사고원인 입증을 완화한 첫 판결"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업체들은 판결의 의미도 조심스레 축소하는 분위기다. 한 완성차 법무팀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판매자'의 하자담보 책임을 인정하는 사례로 '제조업체'의 책임을 묻는 것과는 다르다고 본다"고 밝혔다. 딜러가 문제 있는 물건을 판 게 잘못이지 만든 업체한테 직접 책임을 물은 건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판결 소식이 전해지자 각종 자동차 관련 사이트에는 "속 시원한 판결이다", "애초 전문적 기술 문제를 소비자한테 입증하라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등 법원의 판단을 환영하는 글이 빗발치고 있다.

조 모씨 사건을 맡은 강신업 변호사는 이날 "이번 판결은 판매 및 제조사 측에서 자동차의 결함 없음을 입증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밝혔다.


한국소비자원 측도 "사실상 사업자에게 입증책임을 둔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커 긍정적으로 본다"고 밝혔다. 한국소비자원에 들어온 급발진 관련 상담건수는 지난해 101건, 올 9월까지 48건 등이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이날 "명절 연휴가 끝나면 당분간 상담이 몰릴 것으로 본다"며 "대법원에서 판례로 확정되면 공식 피해구제 접수도 받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급발진 사건은 피해구제 가능성이 없어 접수도 받지 않았다.



주무부처인 국토해양부 등도 급발진이 법원에서 공식 인정된 사례가 없어 통계자료조차 갖고 있지 않지만 이번 판례결과에 따라 관련 업무를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1심 재판부의 판결 취지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과거 2000년대 초반에도 서울지법, 인천지법 등 지방법원에서는 소비자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왔지만 대법원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시어머니를 급발진 사고로 잃은 탤런트 김수미씨(60)가 2006년 대법원까지 가서 자동차 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패소한 것이 대표적 예다.

다만 지난해 7월 대법원이 대리운전기사가 도로를 역주행하며 사람을 숨지게 한 사건에서 "운전자가 통제할 수 없는 불가항력 상황에서 사고가 났을 가능성이 있다"며 무죄를 선고하는 등 전향적 자세를 보이고 있어 변수다.



박병일 신성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자동차에 첨단 전자장치가 갈수록 많이 장착돼 오작동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는 만큼 제조사들이 급발진 사건을 무조건 피할 것이 아니라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을 소비자에게 알리고 안전장치를 추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1999년 차량 급발진이 엔진제어장치의 오작동 때문임을 세계 최초로 밝혀 정부로부터 자동차 분야 '명장'에 뽑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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