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대리운전기사와 경제학자

머니투데이 박종면 편집인겸 더벨 대표이사 부사장 2009.07.20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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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 아이 때문에 여름휴가는 생각조차 못하지만 제 주변 사람들은 올해도 동남아로, 제주도로, 강원도로 많이 떠나네요. 교통편이나 숙박업소 예약이 어렵다고 불평들이 많은 걸 보면 여름휴가 경기는 불황과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대리운전 회사의 운전기사가 도움을 받을 때마다 자꾸 바뀌어서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예전엔 대리운전 수요가 없어 마냥 대기하는 시간이 많았고, 그러다보니 대리운전을 요청하면 한 사람이 거의 고정적으로 특정 손님을 모셨으나 지금은 대리운전 수요가 늘어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대리운전 기사분은 대리운전 수요가 5월부터 경제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다고 했습니다.
 
신용카드 사용 동향은 내수경기의 바로미터지요. 일전에 만난 신용카드사 사장님은 요즘 신용카드업이 호황이라고 하더군요. 경기가 어려웠을 때도 사용액이 크게 줄지 않았고, 4월부터는 본격적인 회복세를 타고 있다고 했습니다. 연체율은 사상 최저 수준이고요.
 
내수경기보다 더 좋은 게 수출경기입니다. 6개월여 만에 만난 석유화학 회사 사장님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습니다. 중국 수출이 급격히 늘어난 덕분에 큰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석유화학 수요만 놓고 보면 중국경기는 과열인 것같다고 걱정까지 했습니다.
 
사상 최악의 불황이라는 데도 기업들의 경영성과는 기대 밖의 좋은 실적, 그야말로 '어닝 서프라이즈'입니다. 올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4~6%가 아니라 너무 희망적이라고까지 했던 마이너스 2%, 경우에 따라선 마이너스 1% 성장까지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경제학자들은 여전히 비관적입니다. 10명 중 여섯, 일곱은 회복은커녕 경기가 저점을 지났다는 것에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미 바닥을 통과했다고 보는 경제학자들조차 '더블딥' 같은 경기의 재추락을 주장합니다.
 
기업들의 투자부진, 고용악화와 사회불안, 정부 재정사정 악화, 유럽발 추가 금융시장 불안 가능성,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가 상승 등 우리 경제를 둘러싸고 안팎으로 불안요인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말이나 연초였다면 이들의 전망과 분석에 토를 다는 일이 없겠지만 요즘 들어선 자꾸 의구심이 생깁니다. 대리운전 기사의 진단이 더 정확한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까지 듭니다.
 
IMF 외환위기와 지난해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발 경제위기를 예측하는 데 실패했고, 더욱이 이번 위기에는 예전의 실패를 만회하려 해서인지 지나치게 비관 일색이네요.
 
연초 경제학자들이 올 7~8월이면 2003년의 신용카드대란이 다시 올 것이라고 마치 예언자처럼 외친 사실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장자' 천도(天道)편에는 수레바퀴를 깎아 만드는 목수 윤편이 책을 읽는 당상의 환공에게 "전하께서 읽고 있는 책은 찌꺼기에 불과하다"고 일갈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수레바퀴를 만들 때 정확히 얼마나 깎아야 하는지를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것처럼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글이나 책으로 기록할 수 없고, 따라서 책은 결국 찌꺼기에 불과하다는 주장이지요.

우리 경제학자들의 예측과 분석도 찌꺼기인가요. 자꾸 의심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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