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韓 'IMF청문회', 美서 재연

머니투데이 조철희 기자 2009.07.16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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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상황을 벗어난 미국에선 요즘 금융위기를 불러온 원인과 진상을 규명하고 정부 대응 과정의 문제점을 조사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전현직 경제수장들이 의회 청문회에 불려나가는가 하면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한 칼끝이 정재계 곳곳을 헤집고 있다.



미 의회는 이른바 '웨이스앤민스'(Ways and Means Committee)라는 경제위기 진상조사 위원회를 꾸려 본격 조사에 착수했다.

이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익숙한 장면이 떠오른다.
책임추궁을 당하는 이들이나 위기대응 과정에서의 과오를 지적받은 관료들이 발뺌과 변명, 염치없는 반박으로 일관하던 10년 전 IMF외환위기 진상조사 당시 우리의 '데자뷰' 이다.



특히 16일 미 하원 정부개혁감독위원회 청문회에 나설 헨리 폴슨 전 재무장관은 10년 전 한국의 경제수장들을 떠오르게 한다.

위원회는 이날 청문회에서 폴슨 전 장관에게 지난해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메릴린치 인수 과정 의혹을 비롯해 정부의 전반적인 위기 대응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따져 물을 계획이다.

하지만 폴슨 전 장관은 청문회에 앞서 배포한 진술서를 통해 BoA 압력 행사는 물론 위기 대응에도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 대응이 완벽한 것은 아니었지만 미국을 크나큰 위기로부터 구해냈다"고 되레 자화자찬을 늘어놨다.


또 "그같은 대응이 없었다면 많은 미국인들이 집과 직장을 잃고, 모아둔 돈도 사라졌을 것이고, 앞으로 살아갈 방법도 잃어버렸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은행권 구제금융 지원 등의 정부 개입이 없었다면 고통은 더욱 깊어지고 불안감은 더 커졌을 것"이라며 "정부의 조치는 시장에서 신뢰를 회복시키기 위해 필수부가결했다"고 강변했다.



그의 말이 전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지만 위기 발생과 초기 대응의 시기에 경제정책을 지휘했던 수장으로서 지나치게 자신의 입장만을 대변한 셈이다.

일각에선 그의 주장처럼 막대한 국민세금을 들여서라도 위기를 불러온 대형은행들을 살려내는 것이 불가피했다면 국민에 대한 사과와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10년 전 우리가 이미 겪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1999년 국회의 'IMF 환란 규명과 경제위기 국정조사'는 끝내 책임 소재를 가리지 못한채 끝났다. 이어진 법원 심판 역시 책임자를 가려내지 못했다.

국정조사 중 열린 청문회에서는 외환위기 발생 당시 경제수장이었던 강경식 경제부총리와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 등이 증인으로 출석했지만 누구도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들은 주지의 사실이었던 환율 정책의 실패마저 인정하지 않았으며 위기 인식이 늦었다는 지적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 강 전 부총리는 자신을 추궁하는 국회의원들에게 "무슨 책임인지 구체적으로 얘기하라"는 등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여 비난을 사기도 했다.



위기 대응을 맡은 임창렬 전 경제부총리도 IMF 구제금융 요청을 늑장 발표했다는 의혹에 대해 발뺌을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 임 전 부총리와 함께 대응팀에 기용된 김영섭 전 청와대 경제수석도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결국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겠다는 청문회의 취지는 일찌감치 물 건너 간 꼴이 됐고, 국민들의 고통만 더욱 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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