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엔 왜 심야 학원이 없을까

뉴욕=김준형 특파원 2009.07.08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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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의 뉴욕리포트]

미국의 여름방학은 석달 가까이나 된다.
부모들로선 프로그램 마련하는게 '고역'이어서 가을 학기 개학날이면 학부모들이 서로 하이 파이브를 하며 축하할 정도이다.

무엇보다 한국처럼 방학동안 빽빽하게 아이들의 스케줄을 짜서 아침부터 밤까지 '학원 뺑뺑이'를 돌릴 수가 없다.
한국식의 입시학원 자체가 찾아보기 힘들뿐더러, 일부 방학때건 평소건 밤늦게까지 문을 여는 학원은 더더욱 없다.



심양영업을 금지하는 조례나 법규가 있어서가 아니다. 심야에 학원을 열어 봤자 찾아올 학생도 없고, 동네에서 쫓겨나기 딱 좋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정부가 심야 학원 교습을 단속해야 할 정도라는 이야기를 듣는 미국사람들은 한국의 교육열에 감탄하기보다는 '상식이하'라는 반응을 보인다.



대학엔 본고사가 없고, 대학수능시험(SAT)도 희한하게 꼬인 문제로 학원과외를 부추기지 않는다. 공교육을 충실히 따라만 가도 대학이 요구하는 요건을 갖출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새벽까지 '선행'에 '심화'를 할 필요가 없다.
대학 입학 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체육과 예능은 오히려 사교육을 통해 방학동안 부족한 점을 보충하려고 기를 쓴다.

한국 학부모들이 몰려들면서 한국식 교육열이 부는 것도 썩 탐탁치 않아 하는 분위기이다.
미국의 강남 8학군으로 불리는 뉴저지주 버겐카운티의 노르우드 타운에서 10년째 4선 교육위원을 역임한 김경화씨는 "시험결과를 중요시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창의성을 키울수 있는 현장학습방식의 교육이 위축되면서 사립학교를 찾는 미국인 학부모들이 늘고 있다"고 말한다. 점수 몇점보다 창의력과 리더십, 자립심 등을 키우는게 아이들의 장래에 진정으로 도움이 되고 대학 가기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미국인들은 "새벽까지 공부해야 할 정도면 공부에 소질이 없는 것 아니냐"는 말을 진지하게 한다. 또 아이들의 건강을 지켜줘야할 부모들이 새벽까지 아이들을 혹사시키는 건 있을 수 없는 비교육적인 학대로 생각한다.


한국에선 학원 심야영업 단속을 두고 시장원리에 어긋난다느니 위헌 소지가 있다느니 하는 말이 나오고 있다. 타부처가 '경제논리'를 들고 나와 단속을 반대해도 강하게 밀고 나가야 할 교육부장관이 오히려 '현실'을 이유로 심야영업금지 법제화를 반대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시장 논리의 '본산'이라고 할수 있는 이곳 미국 월가에서도 감독과 규제없이 수익만 좇게 내버려뒀다간 온나라가 결딴난다는걸 인정하고 있는 마당이다.
더구나 교육은 수익 극대화가 목표인 ‘시장판’이 아니다. 눈앞의 돈에 따라 움직이는 시장논리로는 죽었다 깨나도 '백년대계'를 세우지 못한다.

직장일로 이곳에 나와 있는 주재원들은 처음엔 아이들이 말도 안 통하는 미국에서 적응하는 걸 걱정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보다는 돌아가서 한국의 교육현실에 적응할수 있을지가 더 큰 문제라는걸 깨닫게 된다.
언어장벽보다 더 높은 사교육장벽의 현실에 혀를 차고 분노하면서도 결국은 막판엔 '대전(대치동 전세)'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여기선 학교가는 걸 즐거워하던 아이들은 도살장 끌려가듯 귀국 비행기를 탄다.

심야 학원교습 금지가 ‘근본적 대책’도 아니고 사교육대책의 전부가 될수도 없지만 해야 할 일은 우선 하고 보는게 맞다. 나중에 또다시 흐지부지될 솜방망이 조례보다는, 할 바엔 법으로 하자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권력 헤게모니를 쥐기 위한 정치인들의 '한건주의'라는 물타기식 비판도 있지만, 이런 '한건' 좀 하라고 뽑아준 정치인들 아닌가.

다 떠나서, 우리의 어린 세대들이 취객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밤이슬 맞도록 방치하는 건 어른들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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