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미디어 '왕따'로 살기보다는…

황인선 KT&G 북서울본부 영업부장 2009.07.07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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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톡톡] 미디어 폭발 시대의 천명

뉴미디어 '왕따'로 살기보다는…


교육회사 부사장 친구를 만났더니 중학생 아들한테 플레이보이(?)라도 주면서 친해지라고 하더군요. 펄쩍 뛰었더니 "아들이 소중해? 네 관념이 중요해?" 요즘 아이들 미디어환경은 빨간 책 눈 빨개서 돌려보던 때와는 비교가 안 되니 아들 잃고 싶지 않으면 하라는데... 그날 잠이 안 오더군요.

또 하나. 웹 2.0시대 강의에서 웹2.0 초보, 중급, 고수로 나누더니 필자보고 초보랍니다. '윽, 초보!' 기업간부들 대부분이 그렇다는데 이래서야 미래를 잃지 않을까, 어떻게 리더로 살아갈까 생각에 그날 또 잠 설쳤습니다.



2500년 전 공자는 40에 미혹됨이 없었고(不惑) 50에 하늘의 명을 알았으며(知天命) 60에 세상의 말을 쉬 이해했다(耳順)고 위풍당당 얘기했는데 불혹? 이순? 공자님. 저는 거꾸로 미혹(迷惑)에 이난(耳亂)인데요. 예? 그게 미디어 폭발 시대의 천명이라고요.

뉴미디어 왕따



뉴미디어 시대 최상위 포식자는 30대 아래로 보입니다. 아고라의 파워도, 파워 블로거 대부분도 30대 이하. MP3, 블로그, UCC, IPTV, 트위터로 빠르게 변하고 콘텐츠도 '미드', '일드' 콘텐츠부터 수사가 생략된 모바일 축약어, 셀카 이미지들이고 토론보다는 댓글, 이모티콘들이 언어를 대신합니다. 권위를 자랑하던 브리타니카도 실시간 사전 위키피디아 앞에서는 어림없습니다. 미디어는 곧 권력입니다.

- 19세기 유럽귀족의 권위를 무너뜨린 게 부르주아의 신문이었고
- 케네디는 이미지 매체인 TV토론을 이용해서 열세를 뒤집었고
- 오바마는 트위터로 앞서가는 대통령 이미지를 창출했고
- 사르코지는 가상사회인 세컨드라이프에서도 선거전을 했습니다.

미디어에 의한 사회적 하극상, 왕따 얼마나 느낍니까? 대기업 간부가 자유직, 1인 기업보다 정보에 늦고 부장이 신입사원에게 트렌드를 묻고, 교사가 학생을 따라가고 아이는 가족보다 게임이 편합니다.


'유저 프렌들리(User Friendly)'는 10-20대만 겨냥한 것 같고 아날로그 골프에도 GPS가 들어온다 하고 통신광고 메시지는 잘 모르겠고 모바일은 컨버전스. 30대조차도 멀티태스킹 엄지족이 버겁습니다. 이게 트렌드고 권력이니 좇아가야 하는데 40대 생머리 아줌마가 '테테테... 텔미' 하듯 어색하죠.

에빌린 패러독스

386도 90년대 무림초출 때는 신인류라 했고 30대엔 PPT로 우쭐댄 인터넷 1세대였던 걸 반추해 보면 386이 무력화되는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지금 뉴미디어 유저들이 무력화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죠. 기술은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처럼 가속이 붙으면서 내달으니까.

문제입니다. 30대 이상 사람들이 스피드, IT강국, 다이내믹 코리아의 트렌드를 따라는 가지만 '에빌린 패러독스(동의되지 않은 합의)'처럼 뉴미디어에 개 끌리듯 끌려가는 이 49% 불편한 동거, 방법은 없을까요? 찾아보면 역사에는 이런 트렌드와 언트렌드를 조화시킨 사례들이 많습니다.

- 닮고 싶은 사람 1위인 이어령 전 장관은 디지로그를 주장했고
- BBC, 르몽드는 정론으로 미디어 진화를 넘어 글로벌 파워가 됐고,
- 낀 세대를 겨냥한 KBS '열린 음악회'는 클래식과 팝을 섞어 대박이고 빅뱅의 트로트는 나이불문 10점 만점에 9점, '안티고네' '오이디푸스' 등 2000년도 지난 그리스 비극은 지금도 전 세계에서 재해석되고 있고
- '보랏빛 소가 온다'의 새스 고딘은 그 나이에도 세계적 파워 블로거고 황석영은 인터넷소설 '개밥바라기'를 시도했습니다.

'세상이 너무 빨라' 초조할 것도 아니고 '따라 와. 미래로' 다그칠 것만이 아니라 서로 삼투압을 해야겠습니다. 기업이나 사회는 미디어 왕따들을 아울러야 하고 개인들도 바뀌어야겠죠.

뭐로? 불혹에서 쾌혹(快惑)으로. 시대변화의 창인 디지털 뉴스, 예술 매거진도 짬짬이 보고 야동에 다중 노출되었을 10대 아들을 위해 정 플레이보이가 힘들면 '쭉빵' 레이싱걸 사진이라도 주는 센스로 조금씩 다가서는 게 서로 윈윈하는 쾌혹의 경쟁력 아닐까요?

후지, 모토로라는 디지털을 거부하다 결국 거의 다 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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