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입으론 '상생' 속마음은 '각자도생'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09.07.01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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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들과 당직자들이 1주일째 점거농성을 벌이고 촌각을 다투는 법안은 논의 테이블에서 저만치 밀려나 있다. 여당은 더는 못 참는다며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을 요청하고 야당은 물리력으로라도 막겠다고 벼르고 있다.

2009년 6월의 마지막 날 대한민국 국회의 모습이다. 2년 전 마련한 비정규직법 적용을 하루 앞두고 여야 정치권이 팽팽한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막말도 오간다. 소관 상임위인 국회 환경 노동위원회 추미애 위원장과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이날 협상을 위한 자리에서 '이빨'을 드러내며 '남 탓'을 했다. 안 원내대표는 추 위원장이 권한을 남용해 법안을 상정조차 안 하고 있다며 "국회법의 기본도 모르면서 위원장을 한다"고 말했다. 추 위원장은 "이렇게 막가파식으로 해야 하냐"며 "터무니없는 얘기를 한다"고 맞받았다. 가시 돋힌 말 속에 '대화'가 설 자리는 없었다.

돌아보면 비정규직법은 태생부터 '시한폭탄'이었다. 당시 열린우리당이었던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현실론을 들어 '비정규직을 2년간 고용할 수 있고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거나 해고해야 한다'는 법을 만들며 골치 아픈 문제를 2년 뒤로 미뤘다. 미봉책이라는 지적이 잇달았지만 정치권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냈다며 자축했다.



그 2년의 끝자락이 되자 정치권은 갑자기 사회적 약자 보호를 외치며 비정규직법에 올인하기 시작했다. 한나라당은 법이 시행되면 100만명의 비정규직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며 법 적용을 늦춰야 한다고 나섰고 민주당은 법 적용을 늦추면 비정규직 근로자를 고착시킬 뿐이라며 그대로 시행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지난 2년간 눈길 한 번 못 받던 비정규직법안은 이렇게 '하룻밤 새' 뜨거운 논쟁의 한복판에 섰다.

2차례의 비정규직법 논의에 참여한 한 의원은 "학기 중에는 그 흔한 세미나 한 번 안 하다가 기말고사 하루 전날 벼락치기 공부하는 꼴"이라며 "그나마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시험 잘 보면 떡고물이라도 떨어질까 싶어 책상 앞에 붙어있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비정규직법의 화두는 상생이다.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모두가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자는 게 초심이었다. 지금 국회엔 상생이 없다. 여야가 당리당략에 따라 각자도생을 꿈꾸는 사이 정작 가장 괴로운 이들은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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