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자금 그리고 인플레이션

이상진 신영자산운용 부사장 2009.06.16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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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진의 상식적인 투자]

얼마 전 시중 부동자금이 800조원에 달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되었다. GDP 1000조원의 나라에 부동자금이 800조원라면 엄청난 금액이다.

그러나 사실 부동자금이라는 용어는 매우 비전문적이고 비과학적이다. 굳이 유사한 개념을 찾는다면 금융권에서 사용하는 ‘유동자금’인데 이는 6개월 내에 만기에 돌아오는 각종 예금과 채권 그리고 현금성 자산을 가리킨다.



바로 이 유동자산의 범주에 속하는 돈이 800조원이란 말은 맞는 얘기인데 그 돈 중에서 정말 투자처를 찾지 못해 ‘떠 다니는(부동)’ 돈이 과연 얼마나 될지는 그야말로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이다. 막말로 모든 돈은 고수익 투자처를 찾고 있으니 대한민국 내에 존재하는 모든 돈이 부동자금이라고 주장해도 트집 잡을 일은 아니다.

하지만 현실의 자금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다. 과거 통계를 분석해 보면 세상에 아무리 좋은 투자처가 있어도 정기예금이나 채권 혹은 각종 고정금리 상품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 자금이 70~80%가 된다.



그리고 비교적 부동자금에 가까운 단기상품 즉 MMF, CMA, RP 등에 있는 현금자산도 줄 잡아 반 이상은 용도가 정해진 자금들이다. 기업의 운용자금도 많고 수출입 결제자금 혹은 부채상환 자금이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자금은 유동자금의 10~15% 내외라는 것이 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렇게 따지면 약 70~80조원 정도 된다.

그런데 '부동자금=투기자금'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최근 소위 ‘부동자금’의 흐름을 보면 긍정적이다. 지난 번 하이닉스의 7500억원 유상증자에 26조원의 돈이 몰린 것이 비근한 예이지만 이들 부동자금들이 기업들의 채권과 CP를 매수하고 부동산시장으로 차츰 돌아오는 것은 경기회복의 중요한 동력원이 될 수 있다.

지난 2분기 이후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조차 자금 조달이 원활해지는 것이 확연히 보인다. 더구나 구조조정을 앞두고 있는 기업들의 경우 사모펀드나 각종 파이낸싱 기법을 동원해 기업매각을 쉽게 할 수 있고 경기회복이 본격화되기 전까지 필요한 운용자금을 비교적 낮은 금리에 조달할 수 있어 금융위기 상황에서 생명선이나 다름없다.


또한 부동산 쪽으로의 자금 이동도 부정적으로만 볼 일이 아니다. 경기침체 상황에서는 집값 안정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특히 한국처럼 개인 자산의 85%가 부동산에 묶여 있는 현실에서 집값의 지나친 하락은 소비 침체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미분양 아파트가 여전히 15만가구를 넘는다. 줄잡아 50조원에서 60조원의 돈이 잠겨 있다는 얘기다.

지역적으로 지방이 많아 조만간 변화가 있기는 힘들지만 수도권부터 미분양 아파트가 소화되면 지방으로의 확산도 시간문제다. 게다가 시중에 부동자금이 많아지면 건설회사나 금융권에서 미분양 아파트를 담보로 한 유동화증권을 발행할 수 있는 여건도 개선된다. 다만 이런 부동자금이 선 순환될 수 있도록 세심하게 관찰하고 적절한 통제가 필요함은 당연하다.



그런데 한국은행의 유동성 공급으로 인한 부동자금의 증가가 종국적으로는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상식이지만 화폐량의 증가는 화폐의 가치하락으로 나타나고 화폐의 가치하락은 물가상승으로 연결된다는 고전 경제학의 이론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화폐 증발이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하는지는 참으로 애매모호한 영역이다. 가령 IMF 외환위기 직후 한국 정부는 당시 GDP의 27%나 되는 130조원의 공적 자금을 투입했고 98년은 우리나라 사상 최대의 400억달러 가까운 무역수지 흑자가 났음에도 물가 상승 압력은 없었다.

또 당시 평균 환율도 1400원 내외였다. 미국도 작년 이래 전대미문의 통화를 공급하고 있지만 향후 2~3년 정도 인플레이션 압력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 다수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그래서 물가는 통화량의 증가나 환율의 하락보다는 오히려 수요측면과 상관관계가 높다. 임금이나 부동산 가격 상승이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고 공급측면에서 공장의 설비 부족으로 공급이 딸릴 때 물가 상승압력이 높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고용이 줄고 자산가격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웬만큼 통화량이 증가하고 부동자금이 는다고 인플레이션 압력이 상승할 것이라는 가정은 인플레이션 발생 역학구조의 한쪽 면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향후 1~2년 정도는 물가에 대한 걱정 없이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경기회복이 본격화되는 과정이 전개될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이는 주식투자의 최적 환경이다.

주식투자는 간단한 이유로 접근해야 한다. 너무 이것저것 고려하면 사공이 많아 산으로 올라가는 배꼴이다. 지금 기억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 그리고 경기회복 초입국면이라는 사실이다. 성공할 확률이 훨씬 높다. 좌고우면(左顧右眄) 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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