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가격 혁명, 특급호텔은 '무풍지대'

머니투데이 박희진 기자, 김유림 기자 2009.06.13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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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발 와인가격 혁명..백화점 거품빼기 '붐', 특급호텔 레스토랑은 고가 고수

와인가격 혁명, 특급호텔은 '무풍지대'


#최근 프랑스산 고급 와인인 '샤토탈보2006'을 사러 신세계백화점에 들른 대기업 간부 A씨는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지난 4월 달만해도 판매가 20만원이 넘었는데 10만9000원으로 뚝 떨어진 것. 절반 가격에 와인을 손에 넣은 A씨는 횡재한 기분이었다.

#거래처 사장과 저녁 약속을 위해 롯데호텔 레스토랑을 찾은 B씨. 식사와 곁들일 와인을 주문하려니 요즘 어려워진 경제 상황에 주머니 사정이 앞섰다. 그래도 중요한 거래처 사장과의 저녁이라 와인 리스트를 살폈다. 저렴하면서도 무난한 칠레산 몬테스알파 카베르네 쇼비뇽을 주문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가격을 보니 8만5000원. 얼마 전에 갔던 조선호텔 레스토랑 가격(5만5000원) 보다 50% 이상 비쌌다. 얇아진 지갑 걱정이 더 간절해졌다.



최근 와인 값을 둘러싼 상반된 풍경이다.

백화점 와인 가격은 요즘 부쩍 저렴해졌다. '유통거물' 신세계가 와인가격에 거품을 빼겠다며 지난달 초부터 가격 인하에 나선 결과다. 신세계의 가격인하 선전포고에 롯데, 현대백화점도 동참했다. 반면, 특급 호텔은 여전히 가격 인하 바람의 무풍지대다.



◇백화점, "와인 가격 거품 빼자"=신세계발(發) 와인가격 혁명의 '서곡'을 알린 곳은 신세계 계열사 조선호텔.

삼성그룹 비서실 출신으로 30년간 '삼성맨'으로 살아온 최홍성 대표는 지난해 조선호텔 최고경영자(CEO)로 부임하자마자 '와인 값'에 의문을 품었다. 국내 와인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생각에 와인가격 인하를 위해 태스크포스(TF)팀까지 꾸려 가격 거품 빼기에 나섰다.

그 결과 지난해 7월 24일부터 조선호텔에서 판매하고 있는 와인 전 품목에 대해 전격적인 가격 인하를 단행했다. 기존 와인 가격을 평균 20% 낮췄다. 제한된 수량과 종류로 프로모션용 할인행사는 있었지만 기본 판매가를 전반적으로 낮춘 것은 조선호텔이 처음이다.


백화점, 이마트 등 막강한 유통망을 갖고 있는 신세계가 가세하면서 가격혁명 움직임은 본격화됐다.

신세계는 지난해 12월 말 와인수입 업무를 전담하는 계열사인 신세계L&B를 설립하고 5월부터 가격을 낮춘 와인을 대대적으로 선보였다. 구학서 부회장은 "마진을 최소화해 와인 가격을 낮춰라. 신세계 L&B는 이익을 남기지 않아도 좋다"고 말할 정도로 가격인하에 힘을 실었다.



신세계발 가격 혁명에 롯데, 현대백화점도 동참했다. 롯데백화점은 이달 1일부터 와인에 대해 '그린프라이스' 제도를 시행, 기존 판매가 대비 최고 60% 이상 가격을 낮췄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5월29일부터 와인가격 경쟁력 강화를 위해 그랑크뤼급 와인 9품목과 프랑스, 이태리, 스페인, 호주, 아르헨티나 등 각 국가별 인기와인 25품목으로 구성된 'H-style' 와인 34품목을 선보이고 있다. 'H-style' 와인은 최저가 판매를 위해 최소마진을 적용해 시중 판매가보다 20∼50% 가량 저렴하다.

김은구 신세계 백화점 바이어는 "환율문제에 경기불황까지 겹치면서 올 들어 와인 판매는 계속 부진했다"며 "그러나 와인이 '아이콘'격인 대표 고급 와인 가격 중심으로 가격이 낮아지면서 고객들의 와인 수요가 늘면서 매출이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신세계백화점의 5월 와인 매출은 전년동기 대비 6.4% 증가, 신장세로 돌아섰다.

롯데백화점도 그린프라이스 제도 시행 이후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이달 들어 11일까지 와인 매출은 전년동기 대비 33.7% 증가했다.



유승현 롯데백화점 주류 담당 과장은 "'샤토탈보2006'의 경우 그린프라이스 시행 7일 만에 100병 가량 판매되는 등 고객 반응이 뜨겁다"며 "고객들이 낮아진 가격을 체감하고 크게 만족해하는 분위기다"고 말했다.
와인가격 혁명, 특급호텔은 '무풍지대'
◇특급호텔은 '마이웨이?'=신세계를 중심으로 와인 가격 인하 움직임이 거세지만 특급호텔은 예외다.

특히 신세계 계열인 조선호텔이 와인 가격을 대폭 인하해 거품 빼기에 주도적인데 반해 다른 특급 호텔들은 여전히 비싼 가격을 고수하고 있다.

대중적인 칠레 와인 '몬테스 알파 카베르네 쇼비뇽'의 경우 조선호텔 레스토랑에서는 5만5000원(이하 세금 봉사료 별도)에 판매중이다. 테이크아웃 가격은 3만원에 불과하다. 반면 신라호텔 레스토랑은 7만5000원, 롯데·하얏트호텔은 8만5000원에 판매중이며 워커힐호텔은 이 보다 더 비싼 9만원을 받고 있다. 조선호텔과 워커힐호텔의 가격 차이가 3만5000원에 달해 워커힐호텔 가격이 64%나 비싼 셈이다.



프랑스 와인 '샤토탈보2005'의 경우는 조선호텔이 21만3000원인데 비해 신라호텔은 22만원, 롯데호텔은 27만원, 워커힐은 28만원으로 각각 조사됐다. 역시 가장 비싼 워커힐호텔 제품 가격이 조선호텔에 비해 제품 가격이 가장 비싼 워커힐에 비해 31%나 비싸다.

조선호텔 관계자는 "와인 가격을 낮추면서 고객들의 호응이 크게 높아졌다"며 "와인 가격을 인하한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레스토랑 와인 판매량은 20% 늘었고 테이크아웃 판매량은 100% 가까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호텔들은 와인 가격이 이처럼 천차만별인 것과 관련해 업장마다 제공되는 서비스와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에 가격을 일률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이다.



신라호텔 관계자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판매되는 와인은 와인 자체의 가격 뿐 아니라 서비스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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