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서 영결식까지

머니투데이 양영권 기자 2009.05.29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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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1946년 음력 8월6일에 태어나 2009년 양력 5월23일 잠들다. 그리고 그 이후의 기록.

◇휴일 아침 충격적인 뉴스 = 23일 오전 9시30분. 경남 양산의 부산대병원 의료진은 머리를 비롯해 갈비뼈와 척추, 발목 등 전신이 심하게 상해 실려 온 한 환자에 대한 심폐소생술을 중단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확정된 순간이었다. 30여분 전부터 노 전 대통령의 건강 이상설을 보도하던 언론은 사망 소식을 긴급 타전했다. 휴일 아침 갑작스런 소식에 시민들은 충격에 빠져들었다.

"대통령께서는 가족들 앞으로 짧은 유서를 남기셨습니다."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노 전 대통령이 봉화산 뒷산 등산 도중 부엉이 바위에서 42m 아래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음을 알렸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유서가 공개되자 거물 정치인의 사망이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사후에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할 당시 31분간 경호 공백상태였던 사실이 경찰 조사 결과 밝혀졌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을 경호하던 이모 경호관이 서거 상황과 관련해 경찰에서 몇차례 진술을 번복한 것으로 드러나자 인터넷을 중심으로 음모론이 퍼지기도 했다.

◇전국에 설치된 분향소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23일 오후 6시30분께 부산대병원에서 봉하마을로 돌아왔다. 마을 주민과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노사모) 회원, 지지자 등 1만여명이 자발적으로 봉하 마을회관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천막을 치고 분향소를 설치한 뒤 오후 10시부터 조문을 받기 시작했다. 24일에는 전국 각지에서 20만여명의 추모객들이 몰려와 노 전 대통령의 영전에 국화를 바쳤다. 한승수 국무총리와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 박근혜 전 대표,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 등 일부 인사들은 봉하마을에 내려왔지만 지역 주민의 반대 등으로 분향을 하지 못하고 돌아가기도 했다.

서울 등 전국에서 추모 움직임이 일었다. 23일 오후부터 인터넷 등을 통해 약속한 네티즌들이 삼삼오오 서울 시청 인근으로 모여들었다. 경찰이 시청 광장을 봉쇄하자 시민들은 덕수궁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조문을 시작했다. 덕수궁 돌담길과 시청역 등으로 추모 물결이 길게 이어졌다.

조계사와 봉은사, 도선사 등 주요 사찰과 강남역 등에도 분향소가 차려졌다. 지방에도 각 지방 민주당사와 국회의원 사무실, 사찰에 설치된 분향소에 조문객들이 몰려들었다.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도 24일부터 서울 역사박물관과 서울역 광장 등 전국 99 곳에 분향소를 설치했다. 정부 및 여당 고위 인사들과 재계 인사들이 역사박물관 등에서 노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빌었다.

인터넷에서도 추모열기가 이어졌다. 청와대를 비롯해 주요 인터넷 사이트에 추모 배너가 올라왔으며 네티즌들은 언론사와 주요 포탈 게시판에 추모의 글을 올렸다. 노 전 대통령의 서민적인 모습을 찍은 사진이 '노간지'라는 이름으로 공개돼 네티즌들의 아쉬움을 자아냈다.

검찰 책임론이 불거져 서거 당일 임채진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에게 사표를 제출했으나 반려됐다.

◇자발적인 500만 추모인파= 29일 영결식 전까지 전국 301개 분향소를 다녀간 조문객은 줄잡아 500여만명. 동원된 인파가 아닌 자발적으로 길을 나선 사람들이었다.

봉하마을 조문객들에게 제공된 밥을 짓기 위해 들어간 쌀만 900가마를 넘었으며 영정에 헌화한 국화는 20만여 송이를 여러차례 재사용해야 했다.

구속 기소된 상태였던 노 전 대통령의 가족과 측근이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형집행정지와 보석 결정 등으로 석방됐다. 세종증권 비리에 연루돼 구속 기소됐던 건평씨는 서거 당일 오후 5시께 수감돼 있던 서울구치소에서 나와 봉하마을로 향했다.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 26일, 이광재 민주당 의원과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27일 풀려나 노 전 대통령 영정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은 구치소에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전해듣고 큰 충격에 빠져 “죽고 싶다”고 오열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십만 시민 배웅 받으며 화장장으로 = 노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민장으로 거행하기로 결정됐다. 유족들은 당초 노 전 대통령의 유언을 좇아 가족장을 원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국민들의 높은 추모열기 때문에 이같이 결정했다. 한승수 국무총리와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장의위원 규모는 1383명으로 역대 최대 규모로 구성됐다.

29일 이른 아침 봉하마을에서 발인식을 마친 운구 행렬은 고속도로를 달려 오전 11시 서울 경복궁에 준비된 영결식장에 도착했다. 영결식은 이명박 대통령과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 등 주요 인사 2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 이 대통령 내외는 노 전 대통령의 영정에 꽃을 바쳤다.

이후 운구 행렬은 시청앞 서울광장에서 노제를 치른 뒤 시민들의 배웅을 받으며 서울역으로 향했다.

광장과 인근 도로는 노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노란색 모자와 넥타이 물결이 바다를 이뤘다.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보기 위해 서울광장에 운집한 시민은 경찰 추산 16만, 노제 주최 측 추산 40만여명. 시민들이 몰려들어 운구 행렬은 당초 계획보다 시간이 상당히 지체됐다.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서울역에서 행진이 끝나면 이후 수원 연화장으로 옮겨져 화장이 이뤄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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