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떨어져 키우는 아이 사랑법

이서경 푸른소아정신과 원장 2009.05.22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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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경의 행복한 아이 프로젝트]

승진이(가명)는 만 4세까지 시골 할머니 댁에서 자라고 주말에만 부모와 만나곤 했다. 5세가 되어서 부모와 함께 살게 된 승진이는 부모와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겨 병원에 찾아오게 됐다.

다른 형제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위축돼 눈치를 보거나, 생활 경험이 달라서 생긴 습관으로 부모가 야단치면 혼자서 방구석에 앉아 있는다든지, 심지어 동생이나 장난감을 때리는 등의 문제가 생겼다.



면담을 해보니 승진이는 부모와 안정된 애착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었고, 부모도 눈에 보이는 승진이의 안 좋은 행동을 교정하여 주기에만 급급했지 승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다가가는 방법을 잘 모르고 있었다. 승진이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사이 좋은 부모 자녀 관계를 만들어 가기 위한 상담과 치료를 지속하면서 승진이도 부모도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2006년 통계청의 자료에 의하면 전체 가구 중 43.9%가 맞벌이라고 하며, 전체 가구의 18.5%는 가구주가 미혼자녀와 따로 살고 있다고 한다. 이 중에는 승진이의 경우처럼 부모 모두가 아이와 떨어져 사는 경우도 포함된다. 이런 경우에는 아이와 함께 생활하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부모와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부모 입장에서는 나중에 아이가 자라서 정서적 행동적 문제를 가지게 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하기도 한다.



많은 연구 결과를 살펴 보면 맞벌이로 인해 아이가 따로 떨어져 있는 경우에 문제가 더 많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오히려 부모와의 애착이 잘 형성되어 있거나 부모 대신 돌봐주는 양육자가 질 좋은 보살핌과 애정을 준다면 큰 문제가 없이 아이가 잘 성장할 수 있다는 의견이 많다. 즉, 부모가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주 양육자와 얼마나 좋은 애착 관계를 맺느냐가 더 중요하고, 애착형성에 있어서는 절대적인 시간의 양보다는 상호관계의 질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승진이의 경우처럼 부모가 주말에만 함께 하는 경우, 어떻게 하면 아이와 바람직한 애착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까? 이것만이 정답이 될 수는 없겠지만, 다음의 세 가지 단계를 따라해 본다면 훨씬 좋은 관계가 될 수 있다.

첫째, 재회한 직후에는 서로의 감정을 재확인하고 관계를 돈독하게 하기 위한 워밍 업 (warming up) 단계가 필요하다. 서로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다가 다시 만난 것이므로 약간의 거리감이 느껴질 수도 있다. 이 때에는 헤어졌던 시간에 대한 서로의 감정 교환을 하는 것이 좋다. 또 아이와의 친밀감을 높이기 위한 놀이 방법도 너무 밀착해서 부모가 주도해서 하기 보다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아이에 속도에 맞춰 부모가 따라가 주는 정도가 좋다.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아이를 잘 관찰하고 아이의 행동과 성장한 부분을 언급해 줌으로써 관심과 애정을 표현해주는 게 좋다.


둘째, 같이 있는 시간이 늘면서 더욱 친해졌으면, 이제는 아이와 딱 붙어서 친밀감과 애정 표현을 하도록 하자. 함께 하는 신체 놀이나 간지럼 태우기 등의 자연스러운 스킨십을 하거나 말로 "사랑한다. 참 멋지게 자라고 있구나. 참 잘했다"라는 애정 표현을 해 주어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는 게 좋다. 또 아이가 부모와의 특별한 순간을 기억할 수 있도록 공원 산책이나 먹을 것 같이 만들기 등 공동의 생활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좋다. 아이가 어리다면 부모가 아이의 행동을 똑같이 따라하는 즐거운 놀이를 하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

셋째, 헤어지는 시간이 다가오면 이별에 대해서 준비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헤어지는 것에 대해 감정 표현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아이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떨어져 있는 동안 부모가 생각날 때 표현할 수 있도록 전화나 사진,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자료를 제공하는 것도 좋다. 다시 또 만날 수 있음을 설명하고 안심시켜 주는 것이 중요하다.

주말에만 보는 부모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은 양육에 있어서의 부모로서의 지나친 죄책감이나 불안감을 가져 선물 등의 물질적인 것으로 애정을 보상해 주려고 하거나 아이의 요구를 원칙 없이 들어주는 것이다. 또한 양육을 대신 해 주는 양육자를 아이 앞에서 비난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양육자와 아이 양육에 대한 토론과 조율을 충분히 하여 일치되는 메세지를 아이에게 주는 것도 중요하다.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는 양육자에 대한 비난이나 일치되지 않은 메세지는 아이에게 혼란감을 줄 가능성이 많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잘 표현하고, 질 좋은 양육자와 충분히 의견을 교환하며, 아이와 만났을 때 바람직한 애착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잠시 떨어져 생활한다고 해도 아이는 문제없이 잘 성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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