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바이서울 페스티벌'되려는가

머니투데이 전예진 기자 2009.05.04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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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촛불시위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외국인 ⓒ임성균 기자↑ 2008년 촛불시위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외국인 ⓒ임성균 기자


2008년 5월. 서울은 조류인플루엔자(AI) 열병을 앓았고 광화문 청계천광장은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에 성난 인심의 촛불행렬로 뒤덮였다.

1년 뒤인 2009년 5월. 서울에는 똑같은 모습이 재연됐다. 인플루엔자는 '돼지'로 바뀌었을 뿐, 시청 서울광장에는 촛불집회 1주년 기념케이크의 촛불이 '요란스레' 타올랐다.



지난 2일 오후 서울광장은 '하이서울페스티벌2009' 개막식 준비로 들떠있었다. 서울의 과거·현재·미래를 잇는 소통길을 표현한 개막길놀이 '꽃분홍길'이 태평로를 누빌 예정이었다.

하지만 미래를 아우르려한 행렬은 결국 영화 '백투더퓨처'처럼 과거로 돌아갔다. 검은 투구를 입은 위압적인 경찰진압대와 촛불시위대는 소통길을 단절했다. 시민들은 '명박 퇴진, 경찰해체' 피켓을 들고 도로를 행진했고 이를 막으려는 경찰 부대가 난입해 난장판이 벌어졌다.



같은 날 저녁 8시엔 서울광장 무대도 점거돼 개막 행사를 보러온 외국인 관광객과 시민들은 발길을 돌려야 했다. 전경에 휩싸여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한 외국인은 "이런 광경은 처음이라 깜짝 놀랐다. 기분좋게 인사동을 구경하고 들렀는데 차비만 낭비했다"고 말했다.

촛불집회의 정치적 색깔, 타당성을 떠나 집회를 열고 막는 소모적 싸움으로 서울은 골병이 들었다. 촛불시위대는 그들이 '평화롭고 자유로운 집회'를 외쳤던 것처럼 축제의 자유도 존중해야 했다. 집회 후 깔끔하게 퇴장하거나 즐겁게 축제에 참여했던 분위기를 망친 불청객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경찰은 161개 중대 1만 여명의 과도한 경찰력으로 집회를 원천봉쇄하려고 했다. 이는 집회무리를 선동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시위자를 연행하기보다 축제행렬로 자연스럽게 유도했다면 성공적으로 행사가 끝나지 않았을까.


행사를 주최한 시와 경찰의 사전 협력이 부족했던 점도 안타깝다. 시는 행사준비에 급급해 서울광장이 쑥대밭이 되는데도 속수무책이었다. 시 문화재단 관계자는 "촛불집회가 열리는 것은 알았지만 도로와 무대 점거에 대해선 미처 준비를 못했다"며 "모든 시민에게 열린 행사라 시위대를 막을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2010년 서울에는 또 다른 인플루엔자가 발생하고 '촛불집회' 후유증도 계속될지 알 수 없다. 이미 해외에도 알려진 '하이서울페스티벌'이 '하이전경페스티벌', '바이서울페스티벌'로 추락하지 않으려면 튼튼한 방역체계 못지않게 서로가 성숙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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