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2.0] 열린 공동체를 위하여

이진수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2009.04.27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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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2.0] 열린 공동체를 위하여


일반적으로 경제현상에 대한 연구는 주어진 현실을 반영하는 모형 또는 통계 등 실증자료를 이용해 이루어집니다. 이와 달리 자연과학처럼 통제된 상황에서의 실험을 통해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관찰함으로써 경제현상을 설명하려는 경제학의 분야가 실험경제학입니다.

실험경제학은 아직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 분야를 정립한 공로로 미국 조지메이슨대학의 스미스 교수가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을 정도로 경제학의 한 분야로 이미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러한 실험경제학의 방법론을 이용하여 개인들이 다른 공동체의 사람들에 비해 같은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을 보다 신뢰하고 이에 대해 우호적으로 행동한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발표되었습니다.(Hargreaves Heap and Zizzo, 2009, 'The Value of Groups' American Economic Review.)

실험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습니다. 우선 실험 진행자는 특별한 기준 없이 임의로 사람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예컨대 가팀과 나팀) 그중 두 사람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첫번째 사람에게 일정 금액의 돈(예컨대 1만원)이 주어집니다.



첫번째 사람은 이를 두번째 사람과 나누는데 그 비율은 자신이 결정합니다. 물론 첫번째 사람이 돈을 모두 가질 수도 있습니다.

만일 두번째 사람에게 돈이 나누어진다면 두번째 사람은 실험 진행자로부터 추가로 돈을 받아 결국 전해진 금액의 3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받습니다. 이때 두번째 사람은 이렇게 늘어난 금액 중 자신이 결정한 비율대로 일부를 가지고 나머지를 다시 첫번째 사람에게 주는 것으로 실험은 끝납니다.

이 실험을 반복한 결과 첫번째와 두번째 사람이 동일한 그룹에 속한 경우 첫번째 사람은 두번째 사람에게 평균 전체 금액의 45%를 주고 두번째 사람은 첫번째 사람에게 23%를 돌려준 반면 첫번째와 두번째 사람이 다른 그룹에 속한 경우에는 첫번째 사람은 두번째 사람에게 전체 금액의 29%를 주고 두번째 사람은 첫번째 사람에게 15%를 돌려주었습니다. 즉, 중요하지 않은 기준에 의해 그룹이 결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동일한 그룹에 속했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보다 많은 금액을 주고 돌려받은 것입니다.


이러한 실험결과는 자신의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을 보다 신뢰하고 우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일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특히 한 사회에서 정치경제적으로 우세한 세력이 배타적인 공동체를 이루고 동 공동체에 속했다는 이유만으로 보다 많은 혜택을 누리는 것이 지속된다면 그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로부터 사회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이는 사회 전체의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어쩌면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특권을 제한하고 그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보다 공정한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사회의 정당성 위기를 완화하는데 기여하여 동 공동체의 존속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19세기말 독일의 보수주의자였던 비스마르크가 오히려 복지국가의 성립에 기여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합니다. 이는 사회·경제적인 지위가 세습되는 경향이 점차 강화되어 가는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판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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