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 날아드는데, 정부는 '한숨'

머니투데이 여한구 기자 2009.04.20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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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회복론에 속도전 정책 '이상 신호'

최근 증권과 부동산 시장을 중심으로 경기가 살아나는 조짐을 보이면서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전세계를 강타한 경제위기의 깊은 수렁에서 한국 경제가 점점 빠져나오는 '청신호'라는 점에서 정부가 반색하는 것이 당연할 것 같지만 속사정은 그렇지 않다.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이 '비상경제정부'를 선언할 정도로 경제위기 극복에 국정의 포커스를 맞추고 각종 정책을 추진해왔다. 외환위기 때보다 심각한 미증유의 경제위기라는 진단은 정부가 과감하게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발판이었다.



평소같으면 정책 입안 단계에서 숱한 논란을 야기할 만한 사안도 경제위기라는 '보호막' 아래서 공청회 등 여론수렴 단계를 건너뛰어 곧바로 실행이 가능했다. '경제위기 극복'이란 대의 앞에서는 정부에 비판적인 야당도 몸을 사릴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바탕 아래서 부동산 거래 활성화를 목적으로 한 부동산 핵심규제 완화, 미분양 아파트를 정부가 사실상 책임지는 등의 건설사 지원책, 자동차 구입시 세금 감면 등의 파격적인 대책이 속도감 있게 나올 수 있었다.



국가 재정건전성이 취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뒤로 하고 28조9000억원에 달하는 사상 최대의 '슈퍼 추경'안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경제위기가 엄연한 '팩트'이면서 정부 입장에서는 편하게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던 '만병통치약'이기도 했다.

그러나 무역수지와 경기 동행·선행지수가 전달에 비해 소폭 개선되고 증시와 부동산시장에 국내외 자금이 유입되는 현상이 뚜렷해지면서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실물시장 움직임에 민감한 정치권에서부터 '이상 신호'가 감지됐다. 1가구 3주택 이상을 보유한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제도 폐지가 국회 문턱에 걸려 진도가 나가지 못하고 있다.


그것도 지난달 당정협의 절차를 함께 한 한나라당 내부에서부터 "상황이 달라졌다"는 논리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정부가 수차례 공언했던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3구에 대한 투기지역 해제 논의는 강남권 부동산 시장 회복 움직임에 밀려 언제 그랬냐는 듯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국회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슈퍼 추경' 규모와 예산 배분의 타당성을 둘러싼 논란도 이전보다 격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가 조기에 회복된다고 가정하면 추경 규모는 정부가 짠 것보다 대폭 축소될 여지가 충분하다.

경제위기 극복용 법안 추진에 박차를 가했던 기획재정부는 예상치 못했던 '변수'에 막혀 전전긍긍하고 있다.

특히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가 무산될 경우 이미 지난달 16일부터 소급 적용한다고 밝힌 정부에 시장 혼선의 책임이 전가될 수 밖에 없다.



800조원에 달하는 시중 유동성 자금도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다. 과잉 유동성이 투기 과열로 연결될 경우 재정지출 확대라는 정부의 정책기조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산업적 측면에서 접근한 의료·교육시장 개방 등 서비스업 선진화 방안의 추진 동력도 떨어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조기 경제회복론에 대해서 정부가 "너무 성급한 진단"이라며 적극적으로 차단막을 치는 배경이기도 하다.

재정부 관계자는 "정치권의 입장 변화에 어떻게 대처할지 곤혹스러운게 사실"이라며 "긴 경기침체 국면에서 일시적으로 지표가 호전됐다고 해서 경제위기가 조기에 마무리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다른 재정부 당국자는 "제비가 한마리 날아들었다고 해서 봄이 오는 것은 아니다"면서 "한국 뿐 아니라 선진국들도 경기 극복용 단기 비상대책을 마련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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