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마지막 칼 빼들었다...'국채매입' 배경은

뉴욕=김준형 특파원 2009.03.19 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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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찍어 금리 하락 굳히기...'무기 풍부' 과시

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가 장기 국채 매입을 전격 결정했다.
"시장안정과 경제회복을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거듭된 다짐에도 불구, 연준이 실제로 국채매입을 조기에 단행하지는 않을 것이라던 월가의 예상을 뒤엎은 전격적인 결정이다.

◇ 가장 강력한 '양적완화'정책



연준은 앞으로 6개월에 거쳐 만기 1년 이상 장기국채를 3000억달러어치 매입하게 된다. 구체적인 매입대상 국채와 조건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30년만기 채권은 유동성이 많지 않기 때문에 10년이하 만기 국채가 주된 매입대상이 될 전망이다.

장기 국채 매입은 중앙은행이 동원할 수 있는 마지막 '무기'이자 가장 강력한 '양적 완화'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이미 기준금리가 0-0.25%로 사실상 '제로 금리'에 도달, 연준이 전통적인 금리정책을 펼수 있는 여지는 사라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이 장기국채(만기 1년이상)를 매입하게 되면 장기금리를 하락(채권가격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다. 단기 자금시장의 기준금리 결정을 통한 간접적인 가격결정 기능 외에, 직접적으로 시장에서 국채를 매입함으로써 장기국채를 벤치마크로 하는 모든 금리지표를 초저금리 상태를 유지시키게 된다.

모간스탠리의 글로벌 국채 리서치 부문 대표 제임스 캐런은 "연준의 이날 결정은 극적인 것"이라며 "연준은 모든 소비자 관련 금리를 낮추려 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 국채 매입, 효과 검토→준비→실행


연준은 지난 12월 FOMC 성명에서"장기국채 매입의 잠재적 효과를 검토하고 있다(The Committee is also evaluating the potential benefits of purchasing longer-term Treasury securities)"라고 밝힌바 있다.

이어 1월 FOMC에서는 "매입할 준비가 돼 있다(prepared to purchase)'고 한단계 더 나아간데 이어 두달 뒤인 18일 실제로 이를 단행했다.

금리정책수단을 상실한 연준이 말로만 엄포를 놓는 '종이호랑이'로 전락했다는 관측에 '한방'을 보여준 셈이다.

최근 모기지금리가 하락세를 보이고 신용경색이 다소 회복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
었던 만큼 국채매입 시기가 미뤄지거나 '칼집'속에 계속 남아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었다.
지난 주 30년 만기 모기지 금리는 전 주 대비 0.07%포인트 하락한 4.89%를 기록했다. 15년만기 모기지 금리도 0.02%포인트 내린 4.52%를 나타냈다.

벤 버냉키 의장이 최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경기침체가 올해 끝날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거듭했던 것도 연준이 공격적인 시장정책을 유보할 것이라는 관측을 낳았다.

18일 FOMC 성명 발표를 앞두고 미 증시가 약세를 이어간데도 이같은 관측이 작용
한 것으로 시장관계자들은 풀이했다.

그러나 연준은 대대적인 국채매입과 모기지 증권 추가매입을 발표함으로써 금리하락세에 쐐기를 박고 금융시장 안정의 전기를 확실히 마련하겠다는 의미를 보인 것으로 월가는 평가하고 있다.

특히 모기지 담보 증권(MBS) 매입을 7500억달러, 국영모기지 회사 발행채권 매입에 1000억달러를 추가 투입함으로써 금융위기의 진앙지이자 경기회복의 출발점인 주택시장에 비중을 뒀다.

◇ 지표 개산안돼...강력한 부양책 필요 판단

전격적인 국채매입 결정과 모기지 채권 매입 확대 결정은 경기회복 기대 확산에도 불구하고 실제 경기지표는 보다 강력한 부양책을 요구하고 있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부 주택 및 소비 관련 지표의 개선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4분기 6.2% 역성장한 미국의 국내총생산(GDP)는 1분기에도 최소 연률 5% 이상 뒷걸음질 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난달에만 65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실업률이 8.1%에 달하는 등 1월 FOMC 이후에도 핵심적인 경기지표는 나아지지 않고 있다.

FOMC를 앞두고 발표된 핵심 소비자 물가가 두달 연속 상승하긴 했지만 지난달 전년대비 0.2% 상승하는데 그쳐 목표 인플레이션률 2%를 훨씬 밑돌고 있는 점도 국채매입을 통한 초저금리 유도 정책을 앞당기게 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이미 지난 1월 리치먼드 연은의 제프리 랙커 총재가 연준이 다른 자산을 매입하는 대신 즉각 국채를 매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보다 강력한 수단을 조기에 집행함으로써 정책 효과를 높여야 한다는 견해가 힘을 얻어온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 "경기 살리기 위해 달러 무제한 찍는다"...부작용도 우려

세계 최대 채권펀드 핌코의 설립자 빌 그로스는 연준의 이날 발표가 실행될 경우 연준의 통화운영규모(balance sheet)는 현재보다 50%나 늘어나 3조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여전히 충분하다고 보지는 않지만 의미있는 완화 정책"이라고 밝혔다. 여타 부양책 집행과 합치면 연준의 통화운영규모가 4조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템퍼스 컨설팅의 그레그 샐바지오 부사장은 "한마디로 말하면 연준이 수조달러의 돈을 찍어내겠다는 것이며, 이는 결국 납세자의 돈"이라고 연준 정책의 장기적 부작용을 우려했다.

경기침체를 위해 무제한 돈을 풀 경우 달러가치 하락과 인플레이션 등 부작용으로 인해 장기적으로 경제상황을 더 악화시킬수 있다는 우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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