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아 돈아 푸르른 돈아

머니투데이 김영권 머니위크 편집국장 2009.03.19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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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에세이]인품이 밥먹여 주랴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야생초 편지' 황대권 선생의 말씀처럼 민들레는 민들레여서 예쁘고, 장미는 장미여서 예쁘다. 민들레가 되려는 장미가 없고, 장미가 되려는 민들레가 없을 것이다. 민들레가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듯 장미는 민들레를 만만히 보지 않을 것이다. 각자 알아서 꽃을 피우고 어우러지면 그만이니까. 서로 분별하고, 겨루고, 가격을 매기는 일 따위를 그들은 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사람 만이 장미를 꽃 중의 꽃이니, 꽃의 여왕이니 하면서 우열을 가르고, 값어치를 따질 뿐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민들레가 분수를 아니 다행"이라고 하겠지. 또 누군가는 "장미처럼 될 생각은 안하고 적당주의와 패배주의에 빠져 있다"고 꾸짖을 것이다. 아니면 조금 더 창의적으로 '금딱지 같은 민들레도 잘 꾸미면 돈이 되지 않을까' 궁리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꽃집을 하던 동생이 어느 날 백운호숫가 한쪽에 늘어선 야생 부들을 보더니 깜짝 놀란다. "어머, 저거 비싼 건데 왜 여기 있지." 또 언젠가는 길가에 핀 쑥부쟁이를 보고 꽃이름을 물었더니 고개를 내젖는다. "그거 많이 보던 건데…." 새하얀 쑥부쟁이가 한여름 풀밭에 모여 있으면 안개꽃이 무더기로 널린 것처럼 아름답다.

하지만 그 꽃이야 지천에 깔린 공짜 꽃이니 꽃집 하는 사람에게는 가치가 없다. 오직 꽃시장에서 파는 꽃만 꽃으로 보인다. 그런 꽃들의 시세가 오르내리는 것에만 신경이 곤두선다. 그래서 희한한 서양 꽃들은 줄줄이 이름을 꿰다가도 철마다 들판을 수놓는 야생화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



비단 꽃만 그럴까. 야채도 가게에서 파는 20여 가지 외에는 모두 잡초일 뿐이다. 시장이 만들어내는 이 별난 풍경을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

풍년이 들면 농민들은 밭을 갈아 엎는다. 과일이든 곡식이든 채소든 가격이 폭락하니 풍작이 도리어 재난이다. 정부는 농민을 돕는다며 작물을 대량 수매해 적당히 없애버린다. 그 멀쩡한 생명들을 도로 죽여버리는데도 다들 그게 당연한 모양이다. 돈 들여 키우고, 돈 들여 죽이는 그 비틀린 심사가 이상하지 않은가 보다.

도시는 더하다. 상품가치가 모든 것을 쥐고 흔든다. 물건이든 서비스든 가격을 매길 수 없으면 가치가 없는 것이다. 반대로 돈만 되면 그것이 무엇이든 소중하다. 본질가치나 사용가치는 관심에 없다.


사람도 연봉과 직결되는 상품성이 인간성보다 중요하다. 자기계발도, 자식교육도 모두 상품성을 높이는 게 목적이다. 인품이 밥 먹여주랴!

하지만 생명의 논리로 보면 이건 미친 짓이다. 풍년에 농심이 울고, 분노한다. 소나 돼지도 너무 많이 길러 값이 폭락하면 그 새끼들을 태워 죽인다고 한다. 상품가치 중독을 풀지 않는 한 이런 식으로 지구자원을 낭비하고, 생명을 훼손하는 '비경제' 역설도 풀지 못한다. 여기에는 오직 시장만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렇게 시장에 깜박 홀린 것은 아닌가. 뼛속까지, 무의식 깊은 곳까지 시장논리와 경쟁논리에 사로 잡혀 궤팍한 분별심이 자리잡은 것은 아닌가. 시장 안에서만 보고 시장 밖에서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눈뜬 장님이 된 것은 아닌가.

  ☞웰빙노트

사랑의 빛은 남이 나를 사랑해주기를 바랄 때가 아니라 내가 나를 사랑할 때 나오는 빛입니다. 자기를 제대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왜 남을 닮으려고 안달을 하겠습니까.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남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민들레가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 것은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야생초가 만발한 들판이 아름다운 이유도 자신을 온전히 사랑할 줄 아는 온갖 꽃과 풀들이 서로 어울려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황대권,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나는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계속 치켜세우는 일이 이제는 아무 재미도 없습니다. 사실 우리는 타락한, 우주에서 가장 추악하고 잔인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 작은 행성을 두고 아옹다옹하는 소리를 들을 때면, 정말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자만심을 버리고, 스스로에게 상장을 수여하는 짓을 멈추고, 맑은 정신으로 우리 인간 존재가 극단적으로 잔인하며, 파괴적이고, 폭력적이며, 위험한 종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장피에르 카르티에 & 라셀 카르티에, 농부철학자 피에르 라비>

'더불어 삶'을, '다 함께 같이 사는 것'을 지탱해주는 더 큰 것들, 개별생명체나 무리를 이루고 사는 생명체보다 더 큰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지요. 교환가치가 없는 것들, 사용가치만 있는 것들, 우리 숨길을 틔워주는 시원한 바람, 맑은 물, 굽이치는 산하, 투명한 햇살. 이것들이 더불어 우리를 지켜주는 가운데 사람과 다른 생명체들이 '같이 사는 길'이 열리는 게 아닌가요? <윤구병,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대지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고, 태양은 우리의 아버지다.
우리의 할아버지는 그의 마음을 담아 모든 것에 생명을 주는 창조주다.
동물과 나무는 우리의 형제다.
저 날개가 있는 생물은 우리의 자매다.
우리는 대지의 자손, 그러므로 대지에 상처를 입히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아침 인사를 잊어 아버지 태양을 화나게 하지 말아야지.
우리는 할아버지가 창조하신 모든 것을 마음으로부터 섬긴다.
우리는 모두 함께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다.
짐승도, 나무도, 새도, 사람도. <콜로라도 고원에 사는 티와 인디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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