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미"

머니투데이 이경숙 기자 2009.03.18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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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세상에 사는 우리, How]<1-2>삶과 시장에 선순환을 만드는 사람들

↑왼쪽부터 이환돈 미다솜 대표,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 정문섭 행복한나눔 사무총장. ↑왼쪽부터 이환돈 미다솜 대표,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 정문섭 행복한나눔 사무총장.


2004년, 이환돈(48) 씨는 삶의 경로를 바꿨다. 외부적 요인은 시장 변화였다. 그가 몸 담았던 고급 식자재 시장에 대기업이 진출하면서 대형거래처가 돌아섰던 것이다.

진짜 요인은 다른 곳에 있었다. 시름 속에 아버지의 고향인 충남 홍성으로 찾아간 그는 또 다른 시름을 만났다. 유기농쌀을 수요보다 많이 생산한 고향 농민들의 시름이었다.



"농민들이 농사를 포기하지 않게 가공식품 소비를 늘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가 농사를 포기하면 그 땅에 다시 농사를 짓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는 유기농 쌀 가공식품회사 '미다솜(이야기 더 보기)'을 차렸다. 높은 개발비, 불량률 탓으로 '개포주공아파트' 한 채를 날렸다. 하지만 그는 쌀로 만든 부침가루 등 일부 제품의 소비자 반응에서 가능성을 봤다. 올해 그는 쌀국수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친환경상품ㆍ사회적기업이 느는 이유=2007년, 정문섭(51) 씨는 한 제약회사의 영업 담당 간부였다. 어느 날, 그는 "인생의 전반전은 자신을 위해 살았다면 하프타임이 지난 후반전에는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그는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이 세운 사회적기업 '행복한나눔'(이야기 더 보기)의 사무총장이다. 행복한나눔은 수익을 사회적으로 쓴다. 기아대책을 통해 아프리카, 북한 등 만성적인 굶주림에 시달리는 지역으로 전달한다. 판매물품 또한 유기농 된장, 공정무역 초콜릿 등 사회ㆍ환경 친화적인 것이다.

에듀머니는 자산관리컨설팅업체다. 자산관리는 흔히 '재테크'라고 불리는 지극히 시장 친화적인 분야다. 그런데 이 업체는 지난해 노동부로부터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38)는 "제대로 된 자산관리가 사회 기반을 건전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는 반문한다. "저마다 돈을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싸우는 게 아니라, 각자 일을 해서 번 돈을 합리적으로 소비하면서 협력한다면 사회가 어떻게 달라지겠냐"고.

"우리는 돈으로 인해 제대로 행복해지는 법을 교육하고 싶습니다. 그것으로 우리는 전반적으로 좋은 경제 기반, 건전한 사회 기반을 형성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겁니다."

돈 벌 때 사회를 생각하고 사회를 생각해 돈을 버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노동부에 따르면 사회적 기업은 2008년 말 기준 218개로 증가했다. 2007년 말에 54개였으니, 1년 만에 4배가 증가했다. 이 기간 동안 사회적 기업이 창출한 일자리 수 역시 1890개에서 8600개로 4배 이상 늘었다.

환경을 고려하는 상품, 기업도 늘고 있다. 친환경상품진흥원은 지난해 1267개 업체 , 6005개 제품에 환경마크를 인증했다. 2007년에 비해 인증업체수는 9.4%, 제품수는 17.6%가 늘었다.

2005년 환경마크 인증업체수가 2642개, 인증제품수가 677개였으니 3년만에 업체는 2배반, 제품은 2배 가까이 는 셈이다. 환경마크는 제품 생산에서 소비, 폐기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환경오염을 덜 일으키거나 에너지를 절약하는 제품에 부여된다.

◇왜 다시 공동체 그리고 자연인가= 전문가들은 이러한 트렌트가 정부 정책, 시장 유행을 넘어선 근본적 변화라고 분석한다.

류만희 상지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사회, 자연과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길을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나가기 시작했다"며 "각국 정부의 정책과 지원이 힘을 보태긴 했지만 이건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자발적 움직임"이라고 말했다.

금융자본이 야기하는 시장의 불안정성, 사회 양극화, 환경 오염과 거기서 야기된 각종 질병, 자원의 제한성. 이 속에서 살아남으려다 보니 사람들이 인식과 생활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더 자연에 가까운 삶, 더 공동체적인 삶 쪽으로.

“개인 혼자서는 선순환을 시작할 수 없다." 16년 간 세계은행의 선임 경제 자문으로 일한 경제학자 윌리엄 이스터리가 자신의 저서 '성장, 그 새빨간 거짓말'에서 한 말이다. 엄혹한 경제, 사회 환경이 사람들 속에서 '선순환'의 첫 고리를 만들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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