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정책, 머리따로 손발따로

머니투데이 성화용 시장총괄부장 2009.03.10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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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당국은 저축은행의 부실화된 프로젝트 파이낸싱(PF)대출을 캠코를 통해 매입토록 했다.

부실을 '아웃'시켜 저축은행의 재무지표(자기자본비율)를 개선시키자는 취지다. 문제는 저축은행들이 별로 원치 않는다는 데 있다.

최근 만난 대형 저축은행 대표는 "당국이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축은행들은 잔뜩 몸을 사리고 있고 신규 대출을 아예 묶어 놓은 곳이 많아 유동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시중은행에 수백억원씩, 많게는 1000억원이 넘는 돈을 단기 예치해 놓은 저축은행이 다수라고 했다. 당장 현금이 없어서 고전한다면 모르지만, 상황이 이런데 PF대출을 헐값에 캠코에 넘기라는게 말이 되느냐는 것.

가격도 문제지만 캠코에 넘기고 나면 PF대출 관련 부동산 프로젝트는 아예 방치될 게 뻔해 더 꺼려진다는 얘기다. 그나마 자신들이 가지고 있으면 1년 후 쯤 좋은 기회를 찾을 수도 있는데 캠코에 넘어가면 아무것도 안된다는 게 불만의 요지.



이 얘기를 듣고 몇몇 저축은행 경영진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지만 비슷한 답이 돌아왔다. 요즘 저축은행 간부들이 모이면 십중팔구 이 문제로 당국을 성토한다고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예 캠코와는 무관하게 PF대출 인수 펀드를 자체 조성하는 저축은행도 등장했다. 펀드에서 PF대출을 인수한 후 부실 PF 사업장에 자금을 추가 투입해 정상화 시킨 후 해당 물건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 캠코가 해야할 일을 저축은행 스스로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 이명박정부가 특히 힘을 주고 있는 사업분야가 자원개발이다. 관련 공기업들이 뭔가 해보겠다고 서로 나서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공기업들이 아무리 손발을 퍼덕여도 해외자원 개발사업에서 성과를 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냉소가 들린다. 이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는 세계적인 투자은행 한국 대표의 비판을 요약해보면 이렇다.

한국의 공기업들은 딜(자원개발사업)이 등장하면 의사결정하는데 석달이 걸린다. 일본기업은 두달 걸리고 중국 기업은 2주면 된다. 사회주의 체제의 기형적인 효율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한국 공기업의 의사결정구조가 더 큰 차이를 불러온다.

한국 공기업은 절차상의 허점을 만들지 않는게 최우선이다. 나중에 감사에서 걸리면 안되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꼬투리를 잡히지 않으려면 딜을 분석해 포장하는 요식행위가 중요하다. '위원회'도 통과해야 하고 사전에 관련 당국과도 말을 맞춰야 한다. 말하자면 '모두'가 동의해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다고 해도 해당 사업의 어드바이저리(자문역)를 선정할 때 보면 또 한숨이 나온다. 자문의 전문성과 기능적 효율성은 나중이고, 가장 중요한 게 수수료다. 제일 싼 업체를 선정한다. 수십억달러 짜리 프로젝트에 뛰어들면서 몇십만달러를 아끼느라 눈에 불을 켠다. 수수료가 비싸면 감사에서 트집을 잡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요즘도 한국 공기업들은 해외 자원개발 딜을 번번히 놓친다. 해당 실무자들은 이런 상황을 뻔히 알지만 그저 묻어둘 뿐이다.

# 머리와 손발이 따로 놀면 고단하다. 뭔가를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소득이 없을 때가 많다.

마찬가지로 정책의지는 옳은 방향을 향해 있는데 구체적인 실행이 잘못되면 엉뚱한 결과를 낳는다. 얻는 게 없는 정도면 좋은데, 그나마 가지고 있던 것 마저 잃어버리는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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