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숙인' 은행 인턴의 하루

머니투데이 권화순 기자 2009.02.27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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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물채우고 돈통 나르고 손님 맞이

[인턴 100% 활용하기](중) 청년인턴제 문제점

"솔직히 할 일이 거의 없어요. 눈치껏 일을 찾아다니는 수밖엔…."

졸업을 1학기 남겨둔 대학생 A씨는 6주째 은행 영업점에서 인턴으로 일한다. '꿔다놓은 보릿자루' '알바생보다 못한 인턴' '눈칫밥'이란 말은 이미 익숙하다. 스스로 생각해도 인턴생활은 참 '심심하다'.



출근시간은 아침 8시. 뚜렷한 스케줄도, 따로 주어진 임무도 없는 터여서 '긴 하루'가 다시 시작된다. 먼저 영업점 곳곳에 비치된 가습기에 물을 채운다. 원래 막내 은행원이 하는 일이지만 '눈치껏' 자청했다.

은행 문을 열기 전 금고 담당 직원과 함께 금고에서 시재 박스(돈통)를 꺼낸다. 영업점 창구마다 이를 가지런히 놓고 돈을 채워넣는다. 그러면 어느덧 오전 9시. 몰려드는 고객을 맞느라 은행원들은 정신이 없지만 A씨는 딱히 거들 일이 없다.



은행업무를 하자면 컴퓨터 단말기를 써야 한다. 돈 거래가 이뤄지는 업무 특성상 보안문제 탓에 인턴에겐 사용권한이 없다. 고객정보가 유출될 수 있어 사소한 문서처리조차 도울 수 없다. 일반기업의 인턴보다 더 한가하다.

기껏해야 창구직원 뒤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 업무 분위기를 파악하는 정도. 간간이 짬이 난 은행원이 모니터를 짚어가며 "신용장 거래는 이렇게 한다"고 실무교육을 해주면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

이렇게 반나절이 지나간다. 오후엔 청원경찰 옆에 서서 손님을 맞았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두리번거리고 서있는 고객을 찾아가 창구까지 안내하기도 한다.


운이 좋으면(?) 영업점 돈이 오가는 '모출납'에서 돈 세는 일을 맡기도 한다. 1만원짜리 지폐를 100장 묶은 후 이를 다시 10개씩 모으는 일이다. 금고에 돈다발을 나르기도 한다. 단순 업무지만 마냥 손 놓고 노는 것보다야 낫다.

보통 인턴은 오후 5시에 퇴근해도 되지만 A씨는 일부러 저녁 8~9시에 집에 간다. 은행원들이 바빠서 제대로 얘기를 나눌 수 없는 터라 퇴근시간에라도 말을 붙이기 위해서다. 업무를 배울 수 없다면 '인맥'이라도 쌓고 싶다.



은행들은 몇주짜리 단기 인턴제를 6개월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그러나 단말기를 사용하게 해주든지, 아니면 제대로 된 실무교육을 시키지 않는다면 "6개월을 어떻게 견딜 수 있겠냐"는 게 A씨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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