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귀여운, 행복한 여비서

황인선 KT&G 북서울본부 영업부장 2008.12.02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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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톡톡]행복하게 성공해야 100점짜리 성공

무서운, 귀여운, 행복한 여비서


필자 회사의 사장님 비서는 매일 아침 자신이 아는 회사 사람들에게 "좋은 아침, 좋은 글"이란 메시지를 보내줍니다. 처음에는 "살이 쪄서 걱정이에요", "어제는 슬펐답니당" 같은 미셀러니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건강, 경영, 마케팅까지 폭이 넓어졌습니다. 대부분 퍼 온 글이지만 그녀의 펌 내공은 점점 깊어가는 게 보입니다.

아직 평범한 그녀는 그러나 무서운 여자입니다. 입사한 후 5년 동안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글을 보내는데 작년에 1000회를 돌파했고 지금 1314회를 넘어섭니다. 무섭죠! 이외수씨가 한 사람이 10년만 한 가지를 꾸준히 하면 뭐라도 성공한다고 했는데 그녀는 뭐로 성공할까요? 최소한 그녀는 결혼하면 아이들에게 좋은 글 골라주기 달인 엄마는 될 것 같습니다. 그녀의 모토는 '큰 재주를 지녔다면 근면은 그 재능을 더 낫게 해줄 것이고 보통의 재능밖에 없다면 근면은 그 부족함을 보충해 줄 것이다'입니다.



무서운 여자인 그녀는 그러나 귀여운 여자입니다. 웃기게도 그녀 글을 받는 사람이 말단 직원부터 경영진까지 두루 걸쳐있습니다. 마케팅의 '타깃을 좁혀라. 그래야 집중할 수 있다'에 익숙한 필자 같은 사람에게는 그 당돌한 시도가 귀엽기만 합니다. 얼마 전에는 필자가 쓰는 책이 전문가 대상이라 다소 어렵다고 폼 잡으려고 했더니 바로 "좋은 글은 쉬운 글"이라고 핀잔주더군요. 한 방 먹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글 중에는 어려운 게 없었습니다. 6년차 글쟁이면 폼 잡으려고 어려운 글도 퍼올 만 하건만.

귀여운 그녀는 그래서 행복한 여자입니다. 요즘 좋은 글, 재미있는 사진, 야동들 퍼 나르는 시도들 많죠. 물론 그녀처럼 5년을 꾸준히 하는 사람은 없지만. 얼마 전 누가 보내준 유머모음 PPT ‘뭐야’! 그거를 받아 필자도 몇 군데 포워딩했더니 메일이 막 날아오더군요. 한 일도 없이 으쓱해지는 게 기분 만점이었습니다. 이게 행복 페로몬인가!



언론, 정부, 전문가들이 "이젠 나락이야, 각오해" 근엄하게 겁주고 있어도 우리들은 심해에 있다는 고래의 커뮤니케이션 통로처럼 이렇게 비밀의 인터넷 통로로 행복과 웃음을 전파하면서 서로 위로하고 삽니다. 그녀는 이제까지 1314번이나 시커먼 남자들에게 행복을 날라다 주었으니 행복한 여자지요.

성공은 의식하는 순간 족쇄가 되고 목표를 세우는 순간 우리는 근시안이 됩니다. 시기의 눈으로 봐서 그런지는 몰라도 성공한 사람 중에 불행한 사람들 많아 보입니다. 성공한 사람 중의 70%는 가면(假面)의식에 시달린다고 하죠. 성공하기 위해서 타인과 자기를 다치는 일들이 불가피했기 때문이겠죠.

행복하게 성공해야 100점짜리 성공일 텐데... 20년 전을 생각하면 우리는 이젠 백만장자고 300년 전 왕이 타던 어가를 생각하면 지금은 서민도 럭셔리 어가인 자동차를 타는데 남이 타는 에쿠스, BMW를 보면 속상해 합니다.


우리 비서 아가씨는 아직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비서고 여전히 시집가야 한다고 여전히 살 빼겠다고 우니까요. 그래서 보면 웃음이 나고 안톤 체호프의 '귀여운 여자'가 생각납니다. 행복이 먼 것이 아니구나! 그러니 이참에 거꾸로 보는 게 어떨까요. 아래서 하늘만 쳐다보지 말고 하늘 끝에서 땅을 내려 보는 것 말이죠. 만 미터 상공에서 내려다보면 에쿠스나 마티스나 점일 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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