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신뢰위기, 고름짜야 새살 돋는다

배성민 임상연 기자 2008.11.17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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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장기투자문화](3)투자·판매·운용 해법찾기

펀드신뢰위기, 고름짜야 새살 돋는다


결국 고름이 터졌다. 글로벌 증시폭락으로 일명 반토막 펀드들이 속출하면서 ‘투자자의 묻지마 투자’, ‘판매사의 불완전판매’, ‘운용사의 미숙한 펀드 운용’ 등 펀드 시장의 고름이 터진 것이다. 최근에는 투자자-판매사-운용사간 이해상충으로 펀드 송사가 잇따르면서 ‘펀드의 위기’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고름을 깨끗이 짜내면 상처는 아물고 더 야무진 새살이 돋는 법. 오히려 드러난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위기에 봉착한 펀드 시장도 투자자, 판매사, 운용사가 서로의 고충과 문제점에 귀 기울인다면 보다 더 성숙해질 수 있다.



투자자 “펀드는 너무 어려워”
“속 터지죠. 정기적금 깨고 4000만원을 믿고 맡겼는데 원금의 절반 이상을 날렸으니 괜찮을 사람 있겠어요. 남들 하니까 따라 한 것도 후회 돼요. 펀드에 대해 조금만 알았더라도…”

지난해 9월 해외 주식형펀드에 가입한 최영철씨(35)는 “소중한 국민들의 돈을 제대로 관리 운용하지 못한 펀드 판매사나 운용사 모두 괘씸하지만 시장 분위기에 편승해 아무 생각 없이 펀드에 투자한 자신도 원망스럽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런 생각은 최씨 뿐만이 아니다. 초보투자자들이라면 대부분 비슷한 후회를 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가입한 펀드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어도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펀드 상담이나 가입시 상품설명서나 투자설명서를 나눠주지만 초보투자자가 이해하기엔 난이도가 너무 높다. 초보투자자 중에서 “판매사 직원의 말만 믿고 투자했다”는 사람이 많은 것도 이 때문. 심지어 은행 등 판매사 직원들 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최근들어 문제가 되고 있는 불완전판매도 여기서 연유한다.

주가연계펀드(ELF)에 투자해 원금의 60%이상 손해 봤다는 김규생(34)씨는 “증시가 50% 이상 하락하지 않으면 손실을 보지 않는다는 판매사 직원의 설명만 믿었다”며 “투자설명서가 이해하기 쉽고, 투자위험 정보가 정확히 기재됐다면 투자를 한 번쯤 고민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투자자들 사이에선 펀드 보수와 수수료에 대한 불만도 많다. 판매사의 서비스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보수를 받는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최근 정부당국은 펀드 판매보수 체계를 기존 정률제 방식에서 투자기간에 따라 보수가 낮아지는 스텝다운 방식(이연판매보수)으로 바꿀 계획이다.

운용사 “펀드 양산 자제해야”
펀드 소송 등 일련의 사태를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곳은 단연 자산운용업계다. IMF, IT버블, 카드사태 등 격랑을 거치면서 어렵게 쌓아올린 펀드 시장이 한 순간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 의식에서다.



그만큼 자성의 목소리도 높다. 업계에서는 “트랜드나 인기에 영합해 펀드를 대거 양산하면서 양산하면서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일종의 자이비판이 넘친다. 자산운용사 한 대표이사는 “솔직히 최근 3년간 장기호황 속에서 업계는 ‘뻥튀기 마냥 찍어댔다’는 표현이 적당할 만큼 많은 펀드를 쏟아냈다”며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때”라고 전했다.

이참에 판매 구조와 펀드교육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펀드 판매는 전국 지점망을 갖춘 몇몇 대형 은행과 증권사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소수의 판매사들이 펀드 시장을 과점하면서 판매 보수와 수수료가 내려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자본시장통합법 이전에 판매 채널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또 불완전판매를 줄이기 위해 판매사 직원과 투자자를 대상으로 하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펀드교육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은행 등 펀드 판매사 직원일 경우 30시간의 교육과 간단한 시험만으로도 펀드 판매 자격을 부여 받을 수 있다. 사실상 금융기관의 직원이면 아무나 펀드판매를 할 수 있는 셈이다.



업계관계자는 “펀드판매사 교육시스템만 봐도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불완전판매는 이미 예고된 것”이라며 “정부당국과 업계가 힘을 합쳐 펀드판매사는 물론 투자자들까지 배울 수 있는 전문적인 펀드교육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독당국의 솜방이 징계 등 ‘업계 감싸기’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운용사나 판매사가 규정을 위반하거나 불완전판매를 할 경우 징계 수위를 높여 사고 발생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펀드 판매사 은행들의 항변
펀드의 최대 판매처인 은행은 펀드 판매보수와 수수료의 정당성을 항변하기도 한다. 적립식펀드를 주로 취급하는 은행은 매월 몇만원의 펀드를 유치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별도의 펀드가입 창구를 마련하고, 전담으로 상담하는 곳도 있지만 적립식펀드의 경우 실제로 일반 창구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도 현실이다.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지난 9월말 기준으로 전체 펀드에서 차지하는 적립식펀드의 비중은 22% 정도이지만 전체 계좌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1%에 달하고 있다. 특히 은행권의 경우 적립식펀드 판매 계좌수의 75%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은행 입장에선 자동화기기 업무체계 확대로 일선 창구직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긴 시간 동안 펀드 상담을 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다. 또 판매 이후 최근과 같은 펀드 수익률 급락 상황이 됐을 때 고객의 불만은 운용사보다는 판매사(은행)로 집중된다는 사실도 은행으로서는 부담스러운 요인이다.

하지만 저축상품(예금 등)에서 투자상품(펀드 등)으로 재테크가 옮아가면서 은행은 예대 마진에서 탈피해 펀드 판매 수수료로 취약해진 주요 수익기반을 메꿔왔던 것도 사실이다.



증권연구원은 “이 같은 이유로 판매 수수료를 높게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판매사가 가격 및 수익률 등과 무관하게 계열사 펀드를 추천한다면 투자자의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문제가 된 우리CS운용의 펀드도 판매창구는 주로 우리금융지주의 계열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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