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ㆍ아지매, 우리동네 개발 우짤끼고"

머니위크 지영호 기자 2008.11.04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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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부산시, 재개발ㆍ재건축 새판짜기

‘재개발 예정지 주택을 웃돈을 주고 샀는데 재개발 추진이 백지화된다면?’

부산에서 재개발ㆍ재건축 예정구역이 일부 지정 취소될 수도 있어 큰 손실을 보는 투자자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부산 재개발ㆍ재건축 새판짜기



"아재ㆍ아지매, 우리동네 개발 우짤끼고"


부산시는 최근 재개발과 재건축 예정구역 가운데 사업추진이 잘 이뤄지지 않은 곳에 대해 타당성 조사를 벌여 일부 지역을 제외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일부 재개발ㆍ재건축 예정지에서 사업성 부족으로 진행이 지지부진하자 부산시가 정리 차원에서 메스를 댄 것.

지정 취소의 첫 단추는 설문조사다. 부산시에 따르면 관할구역 내 324개 재개발 재건축 사업지 가운데 아직 개발추진위원회조차 결성되지 않은 93개 예정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다. 설문 내용은 ‘당신이 살고 있는 곳이 재건축(혹은 재개발) 예정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와 ‘왜 사업추진이 안되는가’, ‘구역 해제를 하는 것이 유리한가’ 등 8가지 항목으로 돼 있다.



부산시 관계자는 “재건축ㆍ 재개발에 대한 주민 의식 자료가 없어 조사를 하게 됐다”면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내년도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기본계획을 재점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큰 틀에서 보면 무분별한 정비예정구역 지정에 따른 혼란을 막으면서 아직 사업성이 떨어지는 지역에는 주거민의 자율적인 개ㆍ보수를 허용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부산시는 설문조사가 끝나면 이를 토대로 정비예정구역 지정에 관한 용역작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용역작업에서는 노후불량률 등을 평가해 재개발ㆍ재건축이 필요한 사업지를 우선 선별하는 한편 사업 진행이 부진한 지역에 대한 자료를 수집해 시에 보고하게 된다.


인구 50만명 이상의 재개발ㆍ재건축 수요가 많은 시는 10년 단위로 기본계획 수립이 의무화 돼 있다. 부산시는 지난 2000년에 기본계획을 세우고 2005년에 수정 보완을 통해 현재의 정비예정구역을 지정한 바 있다.

◆ 설문 영향 얼마나?



설문조사는 구역지정 취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까? 부산시 측은 “설문조사의 답변이 구역 지정에 있어 중요한 변수는 아니다”고 말한다.

정비예정구역 내 주민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자료 수준일 뿐, 사업 추진 여부를 가늠할 정도의 가치는 없다는 것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정비구역 수립에 있어 설문내용의 영향을 굳이 평가하자면 약 5%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답변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설문조사 결과가 적지 않게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재개발ㆍ재건축 사업의 주체가 사업지역 내 지분권을 갖고 있는 사람인만큼 사업추진은 예비 조합원들의 의사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본격적으로 개발을 진행하려면 무엇보다 조합원의 의견이 중요한데 조합이 설립되지 않은 개발예정지에서는 사실상 지역 주민이 조합원의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며 설문조사가 나름대로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정비예정구역 취소는 어디?

"아재ㆍ아지매, 우리동네 개발 우짤끼고"
부산시에서 재개발 재건축 추진이 늦은 곳은 93개. 설문조사는 해당 사업지 주택 소유자 가운데 50명을 뽑아 표본조사 방식으로 진행한다.



이들 가운데 부산진구에만 25곳이 몰려 있다. 재개발 예정지가 많은 만큼 사업성이 떨어지는 곳도 많았다는 것이 부산진구 담당자의 설명이다. 부산진구는 이미 2005년 기본계획 수정 시 부산시에 재개발 예정지로 62개 사업지를 신청해 40개 지역에서 도시환경정비사업 승인을 받은 바 있다.

이 외에 사하구가 12곳, 해운대구가 9곳, 영도구가 8곳, 사상구와 동래구가 7곳으로 뒤를 잇는다. 중구, 남구, 연제구 등 기타 자치구도 적게나마 표본설문조사 대상 지역에 포함됐다.

이들 지역 가운데 정비예정구역 취소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점치는 것은 쉽지 않다. 주민들의 재산권과 직결돼있고 투기 가능성이 제기되는 만큼 섣불리 가능지역을 꼽을 수 없다는 것이 자치단체의 입장이다. 다만 그동안 주민들의 호응이 미진했던 지역들이 1차 탈락하지 않겠느냐는 조심스런 전망만 나오고 있다.



최종 결정은 내년 12월 말이다. 정비예정구역 취소가 결정되면 가뜩이나 침체된 부동산시장에 된서리가 될 공산이 크다.

◆주민들 사이에서도 의견 엇갈려

주민들의 의견은 크게 둘로 갈린다. 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돼 ‘재산권 행사를 할 수 없어 불편하다’는 입장과 ‘우리도 잘 살 수 있게 됐는데 왜 막느냐’는 의견이다.



일단 부산시는 불편하다고 느끼는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상당수 주민들이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이 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돼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고 주택의 개보수에 문제가 있어 정비구역 지정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부산시는 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해 재산권을 제한하기 보다는 자유롭게 풀어 주거민의 편의를 돕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현장에 가까이 있는 자치구의 목소리는 조금 다르다. 구청에 찾아와 문의하거나 항의하는 주민들은 ‘왜 정비예정구역을 취소하려 하느냐’며 목소리를 높인다는 것이다.



부산진구 관계자는 “구청에 찾아와 설문조사 결과가 부정적이면 정비예정구역에서 취소되느냐고 묻는 주민들이 종종 있다”면서 “이들은 모두 재개발이나 재건축을 하면 부동산 가치가 크게 뛸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지금 부산의 부동산 경기를 볼 때, 조합결성도 되지 않은 정비예정구역이 개발을 통해서 차익을 얻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서민층이 대부분인 재개발ㆍ재건축 사업의 경우 추가분납금을 주고 새 아파트에 입주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주민들이 많다. 또 일반분양분 아파트가 안 팔릴 경우 그 부담을 그대로 조합원이 떠안아야 한다. 조합원이 결성되지 않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권순형 J&K부동산투자연구소장은 “부산이 물리적 조건을 충족하는 지역이 많아 도시정비기본계획수립에 유리한 면이 있다”면서도 “그러나 추가부담금을 낸다 하더라도 사업적 타당성이 없어 재개발ㆍ재건축 사업을 진행하기 매우 힘든 것이 현실”이라고 전했다.

권 소장은 “부산 부동산시장이 몇년째 미분양 적체물량에 시달리고 있는 마당에 손실을 조합원이 모두 떠안아야 하는 개발사업의 추진을 어느 누가 진행하겠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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