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디자인과 패션을 입다

머니위크 이정흔 기자 2008.10.20 04:10
글자크기

[머니위크 기획]자전거시대/ 액서세리의 진환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7시경 서울 올림픽공원.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하나둘씩 공원 주변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아빠 손을 붙잡고 자전거를 배우러 나온 어린아이에서부터 양복을 그대로 입은 채 공원을 가로지르는 아저씨까지, 말 그대로 그곳은 '자전거 천국'이다.

이들 중 유독 눈에 띄는 무리가 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알록달록한 색으로 치장을 하고 자전거 페달을 신나게 밟고 있는 ‘픽시족(fixie족)’이다. 픽시족이란 픽스드 기어(fixed gear), 즉 뒷바퀴와 페달이 한개의 기어로 연결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일컫는 신조어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자전거의 기계적인 장치는 최소화한 채 자신을 표현하는 패션 수단의 하나로 자전거 타기를 즐기는 이들이 바로 픽시족인 셈이다.



◆'스타일' 살려주는 자전거 액세서리
자전거, 디자인과 패션을 입다


‘이왕 탈거면 폼나게! 멋있게!’

운동 삼아, 취미 삼아 타는 자전거에 왜 그리 멋을 부리냐고? 모르시는 말씀! 길거리에서 흔히 마주치는 검은색 핸들, 검은색 안장의 특색 없는 자전거는 차라리 안타느니만 못하다. 단 10분 자전거를 타더라도 가장 중요한 건 ‘스타일’이다. 남들과 다르게 나를 드러낼 수 있는 액세서리 하나면 평범한 자전거도 금방 스타일리시하게 변신할 수 있는 게 요즘 세상 아니던가.



자전거전문 수입업체인 제논스포츠인터내셔널 서영노 연구소장은 “자전거가 대중화 되면서 자전거를 단순한 교통수단이나 운동수단이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는 패션수단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며 “픽시족의 등장은 최근의 이 같은 자전거 문화를 드러내는 가장 분명한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비단 픽시족들 뿐만은 아니다. 특히 개개인의 개성을 드러내는 데 스스럼이 없는 젊은 세대일수록 자전거 액세서리로 한껏 자신의 자전거를 치장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가장 먼저 변화가 나타난 곳은 자전거의 핸들과 안장. 지금까지의 자전거는 핸들도 바퀴도 안장도 모든 것이 검은색 일변이었다. ‘왜 다른 색은 없는 걸까?’라는 평범한 의문조차 품어보지 않았을 만큼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검은색 일색이던 자전거가 색깔을 입기 시작했다. 하얀색, 분홍색, 연두색 등등 자신의 취향에 따라 핸들 커버를 선택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여기에 자전거 배낭, 헬멧, 버프(자전거용 스카프) 등으로 자전거 의상의 색깔을 맞춰주는 센스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


자전거 가방, 물통꽂이, 안전등 등도 기존의 획일적이던 형태에서 벗어나 디자인을 입기 시작했다. 자전거의 삼각대 안쪽에 물건을 휴대할 수 있도록 장착하는 자전거 가방의 경우는 그 변화가 좀 더 파격적이다. 여성 자전거 마니아들을 위해 캐릭터 무늬를 덧입히는 등 겉모습의 변화는 물론, 위치 또한 삼각대 안쪽을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곳에 포인트를 줄 수 있도록 자유자재로 조절이 가능하다.

◆기능도 세분화, 전문화 경향



그러나 자전거 액세서리의 진화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서영노 연구소장은 “액세서리의 진화는 단지 패션 기능이 강조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능성 또한 강화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자전거 가방의 경우만 하더라도 단순히 아무 물건이나 수납할 수 있는 일반 가방을 벗어나 ‘자전거 디지털 카메라 가방’ ‘자전거 자물쇠 가방’ 등 기능에 따라 세분화 되어 있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경향에 따라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액세서리가 필요에 따라 새롭게 생겨난 경우도 많다.

서 소장은 속도계가 대표적인 경우라며 판매되는 제품 중 하나를 꺼내 보여준다. 은색 테두리가 둘러쳐져 있는 속도계는 언뜻 보기에는 다른 제품과 별 다를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서 소장은 “속도계에 GPS 기능을 장착, 달리고 있는 위치를 위성으로 보여주는가 하면 고도나 주변 온도, 운전자의 심장박동수까지 표시되는 제품”이라며 “가격만 해도 60만원대가 넘어가는, ‘자전거 보다 더 비싼 액세서리’”라고 말한다.



자전거 마니아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 MP3조끼도 ‘신상’ 액세서리 중의 하나. 자전거를 운전하면서 MP3 등의 음악을 자유롭게 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고안된 액세서리로 조끼 형태의 옷을 입은 뒤 조끼 주머니에 MP3 등을 넣고 이어폰을 연결하도록 되어 있다.

최근에는 자전거 도둑의 기승에 자전거 경보기도 등장했다. 자전거가 인기를 얻으면서 도둑들의 자전거 탈취 방법 역시 교묘해지고 있다는 하소연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자전거 자물쇠의 줄을 끊기 위한 전문적인 장비까지 챙겨다니는 자전거 도둑들을 막기에는 자전거 자물쇠가 역부족인 것이 현실.

서 소장은 “튼튼한 자물쇠는 휴대하기가 불편하고, 휴대하기 편한 자물쇠는 도둑을 맞기가 쉬우니 액세서리 전문업체의 입장에서도 가장 골치를 썩고 있는 게 자물쇠”라며 “그래서 최근에는 자전거 도둑을 방지하기 위해 자동차처럼 자전거 경보기까지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귀띔한다. 사람의 움직임을 감지해 경보음을 울려주는 경보기는 몇십만원을 호가하는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더욱 불티나게 팔릴 것으로 예상되는 효자 상품 중의 하나라는 설명이 뒤따른다.



서 소장은 “자전거 액세서리의 경우 아직까지는 자전거 전체 시장과 비교하자면 10~15%에 불과한 작은 규모”라면서도 “하지만 자전거시장이 커짐에 따라 함께 성장할 수밖에 없는 부가시장인데다 특히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패션이나 기능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두드러지고 있어 앞으로도 성장 가능성이 큰 분야로 주목 받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전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