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폭락, 반환점 돌았다

전병서 한화증권 리서치 본부장(전무) 2008.09.08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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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의 증시' 전문가에게 듣는다] - 전병서 한화증권 리서치본부장

편집자주 글로벌 신용경색과 세계경기 둔화 등 대외여건이 악화된 가운데 '9월 위기설'까지 제기돼 국내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졌다. 주가는 크게 하락하고 급등했던 환율은 최근 하락세로 돌아섰지만 시장의 불안심리는 여전하다. 투자자들은 기로에 선 형국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그러나 지금은 우량기업에 투자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의 시장진단과 조언을 소개한다.

증시폭락, 반환점 돌았다


금융위기는 미국에서 발생했는데 주가는 미국에서 먼 순서대로 인도,베트남,중국,한국,일본 순으로 폭락을 했다. 과거 금융위기 때는 위기가 발생한 나라에서 달러가 모조리 도망을 갔지만, 이번 미국의 금융위기에는 전세계 달러가 미국으로 몰려들고 있다. 이는 이십여 년전에 제조업은 일찌감치 접었지만, 돈을 수출해서 돈을 버는 금융업은 미국이 여전히 세계최강이었기 때문이다. 아시아증시의 폭락은 아시아기업의 문제라기보다는 아시아의 싱싱한 제조업에 왕창 레버리지를 걸어 투자를 했던 미국 금융업이 본사가 부도나면서 환매요청에 별수 없이 주식을 급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금융위기의 해법은 단 한가지, 정부가 개입해 구멍 난 곳을 달러로 메우는 것이다.미국 정부의 개입이 이미 시작되었다. 여타 국가와는 달리 미국은 달러 발권력을 가진 나라다. 미국은 달러를 찍어 본원통화를 급속히 늘리고 있지만 금융기관의 부실로 돈이 돌지 않아 아직 승수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금융기관의 부실이 정리되면 엄청나게 풀어 놓은 유동성이 다시 전세계 금융시장을 자극할 수 밖에 없다. 대규모 재정,무역적자에도 불구하고 달러가 강세로 가는 이런 현상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아시아 금융위기처럼 제조업이 부실해 그 여파가 부동산과 금융업으로 전이된 경우 그 후유증은 2-3년을 갔다. 그러나 미국은 인텔,HP,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제조기업들이 문제된 것이 아니다. 금융회사는 종이와 연필 그리고 사람 가지고 장사하는 업종이라서 구조조정이 상대적으로 쉽다. 한국의 경우 최근 매각을 선언한 모조선회사의 경우 구조조정하고 정상화하는 데 수년이 걸렸지만 미국은 부도난 금융회사 베어스턴스를 바로 정리해 버렸다. 금융업에서 비롯된 미국의 위기는 제조설비와 재고를 땡 처리하는데 긴 시간이 필요했던 아시아의 경우보다 짧아질 가능성이 높다.

요즘 증시주변을 돌아보면 환율,금리,물가 등에서 온갖 악재의 선물세트가 터진 느낌이다. 실력보다 많이 오르고 빠질 때는 더 많이 빠지는 것이 증시 특성이다. 금융위기 때 증시패턴은 L자형을 많이 얘기하지만 실제로는 W자나 V자형이다. 금융위기로 증시폭락이 끝이 없을 것 같지만 변화의 조짐은 어디선가 나타난다. 가장 많이 폭락했던 인도와 베트남증시는 바닥을 치고 돌아서고 있다. 주요국의 경기선행지수가 최근 십여년중 최저치를 보이고 있다. 각국의 정부가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을 쓰고 있다. 한국이던 미국이던 간에 금년 4분기나 내년 1-2분기에 경기선행지수가 바닥을 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금년 4분기에는 미국대선이 있다. 최근 30년간의 세계금융위기를 보면 대체적으로 십여년의 주기로 발생했고 이는 대개 미국의 정권교체기와 맞물려 있었다. 이번 미국의 금융위기도 따지고 보면 방산,건설,석유등 굴뚝산업이 지지기반인 공화당정부의 저금리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다. 공화당이 첨단산업의 지지도가 높은 민주당에 밀리고 있다. 민주당이 집권한다면 증시에서도 굴뚝산업 중심의 10년간 투자테마가 IT,바이오,신재생에너지 같은 첨단산업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 상장회사의 절반이 장부가 이하에서 거래되고 있다. 기업들이 대거 부도난 것도 아닌데 좋은 기업들이 장부가 이하로 거래되는 것은 외국인의 급매에 한국시장이 볼모로 잡힌 때문이다. 1,100원대 환율이면 한국 수출기업의 영업이익은 분명히 좋아진다. 금년처럼 KIKO같은 환율헤지수단의 덫에 걸려 순이익이 기대에 못 미친 것은 특이한 경우다. 유가 하락의 최대 수혜자도 석유를 가장 많이 쓰는 아시아국가다.

한국경제와 기업은 10년 전 아시아 금융위기 때와는 다르다. 자금사정 때문에 급매하는 아파트를 사서 손해 볼 가능성은 낮았다. 10년 만에 다시 나타난 위기는 한 두해 만 지나면 97년과 같은 후회를 할 가능성이 높다. 남아있는 미국 부실금융기관의 처리에 따른 충격은 더 이어질 전망이지만 이미 반환점은 돌아선 것 같다. 증시개방 이래 외국인이 언제 한국 편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외국인의 자기 앞가림에 덩달아 같이 우왕좌왕 하지말고 과거 외국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거래소가 무너져도 살아남을 펀더멘탈이 좋은 기업을 사서 모을 때가 오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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