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내 가능한 인수가격 써내라

더벨 현상경 기자 2008.09.01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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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 M&A 매각제언]③8조원=경쟁사 주식 3배 가격...고가 인수는 '진정한 패배' 지름길

이 기사는 08월29일(16:33)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대우조선 (32,750원 ▲1,150 +3.64%)해양이 고가에 매각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전체 지분의 절반 정도에 대한 입찰가격이 당초 6~7조원 정도로 예상됐으나 지금은 무려 130%의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은 8조원(8월29일기준 시가총액 6조6891억원)대로 거론되고 있다.



9월 예비입찰을 앞두고 후보군간 경쟁이 과열된 데다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대금을 많이 받으려는 매각자측의 노력으로 가격이 치솟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매각가 산정과정에서 대우조선해양의 오만 프로젝트와 루마니아 조선소의 값어치가 크게 부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만프로젝트는 대우조선해양이 오만 정부와 계약한 두쿰지역 관광단지 및 프런티어타운 개발사업. 경기도 분당보다 조금 큰 지역에서 대우조선은 2020년까지 대형 수리조선소를 포함한 산업 및 관광, 주거단지 개발을 맡았다. 총 사업비는 20조원대다. 또 대우조선이 97년 인수한 루마니아의 망갈리아 조선소는 유럽시장 공략을원하는 기업에게 훌륭한 전진기지가 될 수 있다.

8조원은 어떤 가격?

이런 값어치를 반영, 대우조선해양 지분 50.37%(96,392,428주)이 8조원에 매각될 경우 주당 매입가격은 약 8만3000원으로 추정된다. 현 주가의 2배를 가볍게 넘는 수준이다. 현재의 주가인 3만5000원선을 기준으로 해도 현재 대우조선해양의 주당순이익비율(PER)과 주당순자산비율(PBR)은 경쟁사에 비해 1.5배 이상 높다.


이런 상황에서 지분 50.37%를 주당 8만원 이상을 주고 사들인다면 경영권이 담보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조선사 주식가격의 수준보다 3배나 높은 가격을 주고 사들이는 결과가 된다.

투자원금 회수기간을 알려주는 에비타 승수(EV/EBITDA)로 봐도 상황은 비슷하다. 현재 시가총액 기준과 지난해 EBITDA(이자, 법인세 및 감가상각 이전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대우조선해양의 에비타 승수는 5~6배 정도.



매각가격이 8조원이 될 경우 승수는 무려 15배 이상으로 치솟는다. 15년동안 대우조선이 벌어들인 돈을 전부 갖고 가야 투자원금을 뽑아낼 수 있다는 뜻이다. 인수포기를 선언한 두산인프라코어의 박용성 부회장은 "시장에서 거론되는 인수가격은 EV/EBITDA기준으로 16배에 달하는 비싼 가격"이라고 지적해 왔다.



매물인 지분이 실제로는 51%임을 감안하면 배당을 통해 피인수기업에서 투자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기한은 2배인 30년이 되기도 한다. 국내 대형M&A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의 에비타 승수다.



"무리한 고가인수, 패배의 지름길"

이가격대 산출에 원가구조와 중장기 업황에 대한 분석이 부족했다는 시각도 있다. 회계법인의 한 관계자는 "채권단이나 정부가 보유했던 기업이 매물로 나올 때 가장 신경써야 할 부분이 바로 원가 스퀴즈(squeeze)"라고 평가했다.

정부가 주인인 기업은 인건비, 판매관리비 및 자본적 지출을 마음대로 쓰지 못해 여타 경쟁사에 비해 쓰는 비용이 현저히 절감된 경우가 많다는 것. 주인이 바뀌면 이런 비용이 더 높아진다는 얘기다.





물론 거꾸로 민간이 주인을 맡으면서 불필요한 비용지출을 줄여 재무상황을 개선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중요한 점은 정부에 소속되었을 때 쓴 비용과 이익의 분포가 민간으로 이관된 후에도 유지될지 따져봐야 한다는 점이다.

인수후보군들도 이런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몇년간의 국내 M&A 공개경쟁입찰에서 형성된 경영권 프리미엄 수준을 감안하면 무리한 입찰가가 불가피하다는 게 고민이다.



시장에서는 당장의 인수전 승리만을 고려한 매각가가 확정될 경우 그 부담은 인수자는 물론, 시장과 국가경제 전체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으로 본다. 복수의 IB관계자들은 이런 점에서 후보군들이 "다른 후보가 과연 얼마를 써낼 것인가" 고민하기보다는 자신이 써낼 수 있는 혹은 감내가 가능한 최대가격이 얼마인지를 제대로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자사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했을 때 재무구조의 변화, 사업다각화에 따른 매출과 이익의 증감, 중장기 성장전략을 정확히 계량적으로 평가하고 쓸 수 있는 최대가격을 산출해야 한다는 것. 이보다 무리한 가격을 제시하는 것은 승리가 아닌 오히려 패배라는 뜻이다. 다른 후보군이 감당하기 힘든 가격을 제시하는 일 역시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국내 최대 M&A매물이자 알짜기업으로 꼽히는 대우조선해양은 다이아몬드에 자주 비유된다. 저주(curse)의 보석, 45캐럿짜리 '호프 다이아몬드'는 독특한 푸른 빛깔에 매료돼 이를 사들인 보석상, 왕족, 재벌들 대부분을 파산시키거나 미치게 하거나 아니면 자살하도록 만들었다.



대우조선이란 다이아몬드 역시 그 아찔한 아름다움에도 불구, 주인이 자격이 없다면 유동성 위기와 그룹붕괴라는 끔찍한 저주(Winner's curse)를 내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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