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칼자루 제대로 써라

더벨 김민열 기자, 현상경 기자 2008.08.28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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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 M&A 매각제언]②8~11% 풋옵션 및 담보 요구...국가경제 고려해야

이 기사는 08월27일(17:30)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국민연금기금(NPS)이 가진 250조원이란 막대한 자금력은 세계 최대 규모의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이나 KKR도 쩔쩔매게 만든다.

웬만한 투자자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글로벌 사모펀드들도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본부장급이 뜨면 창업자와 파트너급이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직접 맞이할 정도다. 상시 휴대하는 블랙베리(Blackberry)를 끄는 것은 기본이고 수시간의 단독 면담 자리를 만든다. 1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심지어 이들 펀드의 고위관계자는 한국을 찾을 때마다 투자 상담을 신청할 만큼 국민연금은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큰 손으로 우뚝 선지 오래다.



'고래'가 돼 버린 국민연금에게 국내 자본시장은 '연못' 수준의 너무나 좁은 무대다. 수천억~수조원대의 캐피탈마켓 투자나 M&A거래는 마음 먹기에 따라 언제든 향배를 바꿀 수 있다. 이런 국민연금이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 나섰다. 투자예정금액은 최대 1조5000억원으로 매입대금의 20%에 가까운 수준.

승패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만큼 포스코, GS, 한화 등은 고위 임원들이 직접 나서 박해춘 이사장과의 면담을 수차례 요청하며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후보를 점지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행보는 덩치에 걸맞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과도한 마케팅과 담보를 요구하며 과열경쟁을 촉발시키고 있어서다.

문제는 국민연금의 태도. 박 이사장 스스로 "연금과 손을 잡으면 반드시 승리한다"며 대외적으로 막강한(?) 자부심을 표명하고 있다. 투자 조건으로 풋옵션과 보장수익률, 담보자산 등 무리한 요구도 서슴지 않고 있다.

국민연금은 후보별로 포스코 8.5%, GS 9.1%, 한화 11%대의 보장수익률을 각각 제시했다. GS와 한화에 대해서는 보유자산이나 유가증권을 담보로 제공할 것을 요청했다. 사실상 주식담보대출 형태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DSME 후보 가운데 '약체'로 평가되는 한화는 국민연금을 잡기 위해 대한생명의 기업공개(IPO) 이후 10%에 해당하는 주식을 시가보다 싸게 제공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까지 내놓았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대한생명의 주식을 직접 담보로 제공할 것을 요구했다. 금융회사 대출로 자금을 모을 때 대한생명 지분담보가 불가피한 한화로서는 들어주기 어려운 요구다. 한발 더 나아가 한화가 보유한 장교빌딩 등 부동산 지분을 매각할 때 우선 매수권을 달라는 제안도 포함됐다.

국민연금이 그 동안의 투자행태에서 벗어나 무리수를 두는 것은 기금운용에 적극 관여하겠다고 선언한 박해춘 이사장의 공격적인 행보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대우조선해양과 같은 공개경쟁입찰 형태의 퍼블릭 M&A에서 적극적이지 않았다. 6조원대 대우건설 인수전에서는 "가격이 높고 연금이 보유할 주식이 아니다"며 슬그머니 투자포기를 선언했다. 대한통운에서도 재무적 투자자로 적극 나서지 않았으며 하나은행과 컨소시엄을 맺은 외환은행 인수전 때는 연금이 1조원 이상을 투입했지만 국민은행 컨소시엄에 패배를 당했다.





문제는 수익률 제고를 위해 무리한 요구를 하다 보면 후보들이 과도한 차입매수(LBO)에 따른 부담을 고스란히 떠 앉게 된다는 점이다. 설사 국민연금이 점지한 후보가 승자가 된다고 해도 높은 재무 부담으로 대형 M&A에 따른 유동성 리스크를 겪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국민연금이 결과적으로 승자의 재앙을 부추길 수도 있는 셈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국민연금이 누가 준 권한으로 칼자루를 쥐고 있느냐"며 "공공기관으로서 대우조선을 누가 인수하는 것이 가장 큰 시너지가 발생하고 국가경제에 도움이 되는지를 따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향후 국가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대형 M&A에 대해 국민연금이 수익률 제고 이상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역할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이번 딜에서 아예 빠지는 것이 대리인으로써의 제대로 된 모습일 것이다. 국민의 돈으로 쥔 권력이 일부 개인과 기관의 권력으로 탈바꿈 돼 국가 경제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딜을 혼탁하게 만들어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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