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8월25일(11:54)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
리만브라더스가 한국 금융기업에게 손을 벌린 것은 지난 6월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2분기 30억 달러에 가까운 손실을 기록한 리만은 60억달러의 자본을 확충하기 위해 국내 금융회사를 포함해 해외 투자자로부터 자금모집에 나섰다.
그러나 리만의 신용손실 규모가 120억 달러를 웃돌 것으로 추산되면서 경영권까지 매각대상에 포함되자 상황이 반전됐다. 마음이 바뀐 KDB와 리만이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은 것은 지난 7월 중순께.
민유성 행장은 취임하자마자 글로벌 IB인수를 추진했다. 산은 민영화를 통한 IB업무 강화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글로벌 투자 은행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물론 런던, 홍콩, 시드니 등 해외 주요 영업망을 보유한 리만을 인수할 경우 KDB가 목표로 하는 글로벌 IB를 단기간에 이룰 수 있어 보였다.
민 행장은 KDB내부에 테스크포스(TF)를 만드는 한편 국내 IB 한곳과 현지 IB를 은밀히 고용했다. 자금은 큰 변수가 안됐다. KDB가 추진 중인 대우조선해양 매각자금에다 국내 연기금과 금융회사 몇 곳과 컨소시엄을 구성하면 충분했다. 외환은행을 인수할 정도의 돈이면 재무적 투자자(FI)가 아닌 전략적 투자자(SI)로 경영권을 행사할 만큼 미국 금융회사 유동성 위기는 심각했다. 리만을 인수할 경우 이곳을 통해 미국의 부실채권(NPL) 시장을 진출한다는 세부 전략까지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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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KDB의 시도는 제한적이었다. ‘선(先) 민영화-후(後) 글로벌 IB’라는 정부가 그린 도식 내에서 협상력을 제대로 발휘할 시기를 놓쳤다.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으로 제때 결론을 내지 못하는 사이 중국 등 보이지 않는 경쟁자들에게 밀려났다.
인수 이후 추가 부실에 대한 책임소재도 걸림돌 가운데 하나였다. KDB의 리만 인수 시도를 놓고 금융당국 실무자들은 대놓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일 만큼 서브프라임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신용경색에 대한 불확실성 우려가 여전했다.
KDB의 이번 리만 시도는 일단 실패로 끝났지만 글로벌 IB에 대한 도전만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일각에서는 인수주체를 놓고 정부나 국책은행이 아닌 민간베이스에서 해외IB 인수를 추진해야 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엑손플로리오 법에 의해 길목을 막아 놓은 미국 금융당국이 국내 시중은행이나 증권사의 현지 IB 인수 승인을 허용할지는 미지수다. IB업력이 일천한 국내 민간 금융 회사들이 인수 이후 현지 우수인력을 컨트롤할 수 있느냐는 난제도 남아있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요즘 같은 상황이 아니면 미국의 세계적인 IB를 외국인이 인수하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며 “현재 거론되는 매물을 한국만 들여 다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