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늘리기 '꼼수' 공기업 개혁의지 퇴색

머니투데이 여한구 기자 2008.08.11 17:35
글자크기

(종합)공룡기관은 민영화 대상서 몽땅 제외

정부가 11일 '1차 공기업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공기업 개혁 프로젝트에 시동을 걸었지만 개혁 의지는 크지 않아 보인다.

공기업 개혁의 '꽃' 이랄수 있는 민영화가 추진되는 기관은 손에 꼽을 정도로 축소됐다. 대상 기관도 국민들 귀에는 생소한 곳들이다. 통·폐합 작업은 구체적인 일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기능조정까지 포함한 전체 선진화 대상 기관도 319곳 중에서 많아야 100여개 안팎에 머물 전망이다.



민영화, 숫자 늘리기 '꼼수'=이날 정부가 민영화 대상 기관수를 27개라고 밝혔지만 꼼꼼히 들여다보면 순수 공기업은 △한국자산신탁 △한국토지신탁 △건설관리공사 △경북관광개발공사 △뉴서울 CC 등 5개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대우조선해양과 쌍용건설 등 공적자금이 투입된 14개 기업과 이미 6월초 금융위원회에서 발표한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및 그 자회사로 채워져 있다. 민영화로 꼽은 인천국제공항은 지분 49% 매각을 추진해 엄밀한 의미의 민영화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정부도 민영화 기관 숫자 늘리기 식 '꼼수'임을 사실상 인정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공기업 선진화를 주제로 한 당정협의에 앞서 1차 선진화 기관을 33개라고 밝혔었다. 그러나 당정협의 후 나온 내용은 41개였다.

이미 발표된 산은과 기은을 포함시키고, 토론회 후 발표키로 한 인천공항을 보태 8개를 늘린 결과다.

이와 관련, 배국환 재정부 제2차관은 "산은 등의 민영화 방안을 국민들께 다시 알리고 이미 개혁방안이 확정된 곳까지 포함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돼서"라고 설명했지만 다급하게 서류상으로 숫자를 늘렸다는 인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공기업 개혁 질과 양 '퇴색'=정부 분류법을 적용하더라도 50~60개 기관을 민영화한다는 최초 추진안과 비교할 때 공기업 개혁의 정도는 질적·양적으로 크게 떨어진다.

민영화 추진 기관도 대형 공기업은 대부분 제외됐고, 상대적으로 기관 파워가 미약하고 노조 반발이 적은 '만만한' 곳만 포함시켰다는 지적이 많다.

매머드급인 주택공사와 토지공사 통합 작업도 몇발짝 뒤로 후퇴한 느낌이다. 정부는 오는 14일 공개 토론회에 앞서 지방혁신도시가 걸린 지방자치단체의 반발을 의식해 진주(주공)와 전주(토공)으로 선 이전한 뒤 통합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혁신도시 이전 예정 시기가 2011년이라는 점을 감안할때 노조와 두 기관의 갈등이 이어지면서 통폐합 자체가 흐지부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일고 있다. 신용보증기금과 기술신용보증기금 통폐합 건은 8월말로 예정된 2차 발표로 시기가 미뤄졌다.

실제 정부는 "토론회 결과와 조정 과정을 거쳐 정부안의 변경도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어 현재안보다 더 후퇴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지적을 샀다.

스스로 발목잡는 정부=공기업 개혁 의지 퇴색은 이미 예고됐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 이전만 해도 청와대 국정기획실 주도로 대규모 민영화를 핵심으로 한 개혁방안이 논의됐지만 촛불 민심에 밀려 스스로 발을 뺐다.

정부는 유언비어 수준의 '민영화 괴담'이 유포되자 정면 대처 대신 눈치 보기에 급급하면서 전기·가스·수도·건강보험 등 4대 부문을 민영화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이 바람에 한국전력을 비롯한 에너지 공기업과 철도공사, 수자원공사, 도로공사 등 정작 대대적인 개혁작업이 필요한 '공룡' 기관은 민영화의 '무풍지대'가 됐다.

이후 공기업 개혁작업을 진두지휘했던 곽승준 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이 경질됐고, 청와대서 주관하던 공기업 개혁작업도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부담을 짊어지게 된다는 이유로 각 부처로 넘겨버렸다.

현재는 기획재정부 주도로 공기업선진화특위에서 공기업 개혁 작업을 총괄하고 있지만 정권의 핵심인 청와대가 챙기는 것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여기에 개혁 작업을 일선에서 진두지휘해야 할 공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대거 '낙하산' 논란에 휩싸이면서 정부 스스로 최대 무기인 '명분'을 상실해갔다.

공기업선진화 특위 위원장인 오연천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도 민영화 대상인 산업은행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어 공정성 논란에 휩싸여 있다. 또 공공기관운영위 심의를 거치지 않고 공기업선진화특위를 열어 절차적 위법성 시비도 제기돼 있다.

김동렬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1차 민영화 대상으로 언급된 공기업들을 보면 보여주기식 성격이 짙다"면서 "이 정도 수준의 민영화로는 경제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렵고 2, 3단계 방안도 크게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