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유가하락 반갑지만

머니투데이 정희경 금융부장 2008.08.08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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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부지로 치솟던 국제 유가가 하락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배럴당 200달러 선도 그리 멀어 보이지 않았던 유가는 이제 100달러 선에 보다 가까이 다가섰다. 서부텍사스산 중질유 9월 인도분의 경우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지난 6일 한때 117달러 대까지 내려가며 2개월 만에 최저 수준을 보였다.

‘S(스태그플레이션)의 공포’까지 들먹이게 만들었던 유가가 떨어지는 것은 정점에 달한 무더위 속에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다. 올 들어 서민들의 지갑을 얄팍하게 만들고, 중소기업들을 궁지로 몰았던 것이 다름 아닌 고유가였다.



그러나 최근 유가 하락세에 환호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원유 공급이 늘어난 게 아니라 경기 침체로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 때문에 유가가 떨어지고 있는 탓이다. 유가 하락 이면에 더 큰 복병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고유가 충격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돼 경기가 둔화했거나 그 조짐을 보이는 것은 이제 ‘전지구적인’ 현상이 됐다.

유가가 설사 100달러대 까지 내려가더라도 경기 문제가 풀리는 것은 아니다. 경기 둔화 위험을 감수하고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차단하기 위해 7일 금리 인상을 단행한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원유 110달러대를 만만하게 보는가”라고 반문했다. 연초 한은이 전망한 유가는 배럴당 80달러 초반. 비상조치까지 발동해야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할 수 있더라도 경제를 성장 궤도에 다시 올려 놓을 정도로 상황이 호전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아울러 유가가 본격적인 하락 국면에 진입했다고 단정하기도 이르다. 지난 2004년 원유를 포함해 상품의 랠리를 예상했던 짐 로저스는 당시 “앞으로 10년간 에너지 가격은 틀림없이 조정을 거칠 것”이라고 말했다. 주가와 마찬가지로 상품가격 역시 끊임없이 오르기만 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단기 저점에서 바닥을 다지는 과정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 또는 의외의 변수가 유가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로저스는 한발 더 나아가 “경기 침체가 온다고 해서 유가가 반드시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오일쇼크로 인해 세계 경제가 동반 불황에 빠졌던 1970년대 유가는 15배 상승했다는 게 한 근거였다. 당시는 영국이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을 정도로 선진국 경제도 어려웠던 시기였다.

그는 “유가 역사를 보면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경기 침체나 기술적 혁명을 훨씬 능가하는 위력을 갖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최소한 석유생산 능력이 소비를 충족시킬 때까지 저유가 시대로의 복귀를 기대하지 말라는 조언이다.


한때 생수보다 쌌던 휘발유(주유소 판매가격)는 지난해부터 본격화한 ‘랠리’를 거치며 생수나 콜라 등 탄산음료와 엇비슷하거나 조금 웃도는 수준으로 가치를 ‘인정’받게 됐다. 확실한 대체 에너지원이 확보되기 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로저스와 같은 투자자에게 원유는 여전히 저평가된 상품일 수 있다.

그간 에너지 위기가 반복돼 온 것은 주력 에너지원에 대한 오랜 홀대와 무관심 때문이며, 그로 인해 한번 닥친 위기가 쉽게 해소되지 못했던 것은 아닌 지 확인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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