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신주류'와 '신비주류' 사이

머니투데이 박재범 기자 2008.08.06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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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의 여의도 편지]

편집자주 별명이 '제비'입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릅니다. 친구들이 그렇게 불렀습니다. 이유도 명확치 않습니다. 이름 영문 이니셜 (JB) 발음에 다소 날카로운 이미지가 겹치며 탄생한 것 같다는 추측만 있을 뿐입니다. 이젠 이름보다 더 친숙합니다. 동여의도가 금융의 중심지라면 서여의도는 정치와 권력의 본산입니다. '제비처럼' 날렵하게 서여의도를 휘저어 재밌는 얘기가 담긴 '박씨'를 물어다 드리겠습니다.

# '독고다이' '돈키호테' '좌충우돌' '독불장군' '저격수'….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홍준표를 표현하는 데 이만한 단어들도 없다. 풀어 쓰자면 '비주류'로 '튄다' 정도가 된다.

그를 '아는' 이들 대부분도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자신은 그렇지 않단다. 절반만 동의한다.



그는 스스로 "비주류"라 칭한다. 반면 '튄다'에는 목청을 높인다. 돈키호테나 공격수 같은 딱지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결국 '비주류'로 살아온 게 맞지만 그러다보니 '튄다'는 이미지가 덧씌워졌을 뿐이란 얘기다.



# 홍준표는 비주류였다. 초등학교 생활 6년 동안 5번 전학을 하면서 비주류는 시작됐다. 중·고등학교도 3류였다. 생계의 어려움 속 고대 법대의 낭만은 사치였다.

검사 생활 11년 동안에도 철저히 비주류로 살았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슬롯머신 수사 이후 검찰 조직의 '왕따'도 경험했다.

정치판에 들어온 지 10여년간의 세월도 '주류'와는 거리가 멀었다. 신한국당에 입당한 직후 92년 대선자금 공개를 주장, 자신을 영입한 김영삼(YS) 전 대통령으로부터 미운 털이 박혔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에게선 '박해'도 받았다.


당내에선 박근혜 전 대표와 부딪쳤고 소장파들과도 긴장 관계를 형성했다. 지난해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선 '빅2'에 가지 않고 홀로 뛰는 '비주류'의 진면목(?)을 보여주기도 했다.

# '비주류'의 대명사 홍준표가 '주류'로 거듭난 것은 불과 두 달 전이다. 그는 거대 집권 여당의 원내 대표가 됐고 수식어도 '비주류'에서 '신주류'로 바뀌었다.

이명박 (MB) 대통령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사람, 실세 대표 등의 평가가 뒤따랐다. 그는 거침없이 뛰었다.

당시는 쇠고기 파동 이후 국정이 혼란스러웠고 여당 지도 체제도 갖춰지지 않았을 때다. 그 때문에 그는 더 뛰었다. 정권 교체 후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책임감도 그를 부추겼다.

정부를 견제했고 청와대와 당내에도 쓴소리를 했다.

# 그런 그를 다른 쪽에서 보면 '혼자 튀는' 인물이 된다. 당내에 일고 있는 그를 향한 반감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일부는 "소통 부재"를 얘기하고 일부는 "독선"을 말한다. 모두 '비주류'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번 '원구성 협상'에서 보여준 그의 결단을 반대편에서 찾는다. 비주류의 독단이 아닌 신주류의 대범함을 나타나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얘기다.

"배를 띄우는 게 중요하다"고 누차 강조한 게 좋은 예다. 당의 한 인사는 "입만 열면 '법'과 '헌법'을 강조했던 홍 대표가 법에 없는 것을 합의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 결국 홍준표는 현재 '신주류'이자 '신비주류'다. 그는 주류의 강점과 비주류의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는 자신이 쓴 책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비주류를 오래 하다 보면 늘 편향된 사고를 갖게 되고 이해심이 부족해지고 조급증에 시달리게 된다. 철이 들고 난 뒤부터 나는 늘 이점을 경계해 왔다."

"세상에서 주류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좋은 것인지 나는 평생 비주류를 해봐서 잘 안다. 여유와 낭만이 넘치는 주류로 살고 싶다"

'사면초가'라지만 홍준표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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