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무명 강사의 선택

김기홍 부산대 경제학과 교수 2008.07.11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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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을 위한 협상학]항상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라

어느 무명 강사의 선택


스타 강사가 되기를 원하는 A씨. 기업체나 학원에서 강의를 할 기회를 잡으려 하는데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는다.

어느 날 드디어 A씨에게 한 기업체의 강의 의뢰가 들어왔다. 단, 강의 의뢰자는 A씨가 아직 업계에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니 시간당 강사료는 10만원 밖에 줄 수 없다고 한다.

A씨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이 기회를 잡고 싶기는 하나 강사료가 너무 저렴하다는 것이다. 강의 의뢰자는 A씨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번에는 저렴하게 강의를 하지만 강의가 업계에 알려지면 더 높은 강사료를 받을 수 있다.’ 그러니 수락하라고 한다.



자 여러분이 A씨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1)강사료가 저렴하니 강의를 할 수 없다고 한다. 2)강사료가 너무 저렴하니 좀 더 올려달라고 한다. 3)시작이 반이니 일단 이 강사료로 강의를 시작한다. 4)비록 알려지지 않은 상태지만 좋은 강의를 할테니 강사료를 두 배 이상으로 해 달라고 한다. 독자 여러분은 조금 생각한 뒤에 이 글을 계속 읽기 바란다.

첫 번 째 응답은 거절하는 것이다. 자신은 어느 정도 이상의 강사료가 아니면 강의를 하지 않으니 고민 끝에 거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칼럼에서 여러 번 설명했지만 자신의 원칙을 지키는 것은 결코 나쁜 태도가 아니다.



그래서 강사료에 관한 자기 원칙이 있고 그것을 지키기를 원한다면 거절하는 것이 좋을 수 있다. 하지만 A씨의 경우 아직 강의 기회가 많은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A씨가 거절할 경우 강의 의뢰자가 더 높은 강사료로 다시 강의를 의뢰할 가능성은 높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아직 무명이다.

두 번째 응답은 강사료를 올려달라는 것이다. 이 역시 나쁜 태도는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강사료를 달라는 것은 강의를 의뢰받은 사람의 권리일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만 더. A씨는 아직 저명한 강사가 아니고 강의 기회도 많지 않다.

그런데 왜 무작정 강사료를 올려달라고 해야 하나. 최소한 왜 강사료를 더 받아야 하는지 이유라도 말해야 하지 않을까. 달리 말하면 무명인 A씨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강사료를 더 줘야 할 이유가 없으니 이 역시 A씨로서는 최선이 아니다.
 
세 번째 응답은 모든 걸 감수하고 그냥 강의하는 것이다. 이 역시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무명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의 실력이 인정받을 때까지 그냥 저렴한 가격으로 봉사하는 것이다. 강의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만족스러울 수 있으나 결코 행복한 결과는 아니다.


마지막, 네 번 째 응답은 조건부 제의다. ‘당신이 맞다. 나는 무명이다. 하지만 강의 내용은 결코 다른 강사보다 떨어지지 않을테니 최소한 두 배의 강사료를 달라.’조금 당당한 태도다. 하지만 협상론의 관점에서 볼 때는 가장 바람직한 태도다. 우선 상대방의 제의를 반박하지 않았다. 무명이라고 인정했다. 그리고 무작정 강사료를 더 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좋은 강의를 한다는 것을 전제로 강사료 인상을 요청했다. 조건을 단 것이다.

강의 의뢰자의 입장에서는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생긴 셈이다. 어차피 강의는 해야 되기에 조금 저렴한 가격에 강사를 섭외했는데, 강의 자체보다 강의의 내용이 중요하다면 A씨의 요구를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셈이다. 만약 강의 의뢰자가 거절한다면 A씨는 다시 선택할 수 있다(저렴한 강사료로 강의를 하던지, 아니면 거절하든지). 그러니 A씨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더 커졌다. 정말 바람직하지 않은가?

한 가지만 더 말하자. 여기서 네 번째 태도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한 것은 협상론의 관점에서 말한 것이다. 달리 말하면 A씨가 네 번째 태도를 선택하지 않고 다른 태도를 선택하더라도, 조금 시간은 걸릴지언정, 그가 스타 강사가 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가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데 전력을 기울이기만’ 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네 번째 선택이 바람직한 것은 이 방법이 그를 ‘지혜롭게’ 스타 강사가 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경우에도 그는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 경우 지혜라는 표현은 그가 자신이 처한 상태에서 자신을 무작정 희생하지 않고(저렴한 강사료로 강의를 시작하는 것은 자기 희생의 의미를 조금 담고 있다), 가장 상대방과 자신이 함께 공감하고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한다는 의미다.

상대방과 자신이 함께 공감하고 만족한다는 것.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 아닌가. 협상의 목표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니 고객을 사로잡는 일을 하건, 자신을 알리는 일을 하건, 혹은 자신이 속한 기업 혹은 국가를 위해 일을 하건,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만족하면서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내는 것이다.(협상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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