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보낸다, 너무 절묘한 순간에

머니투데이 성화용 시장총괄부장 2008.07.11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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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이건희 전회장 결심공판 참관기

그를 보낸다, 너무 절묘한 순간에


21년 전 거인이 타계하자 망망대해에 배를 띄운 그였다. 과연 이건희가 호암(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만큼 하겠느냐고 모두들 수근거렸다.

안으로 숨고 한 가지에 몰입하는 그의 성향이 거대기업을 끌어가는데 적합하지 않을 것이라고들 걱정했다. 몇 년이 흘러 반도체가 세계 1등이 됐을 때도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거나 부친(호암)의 유산일 뿐이라고 낮춰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신경영'이 성공하고 외환위기를 넘어 삼성이 한국 일등기업으로,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자리잡고 나자 이건희는 삼성을 대표하는 이름이 됐다.

소유자가 아니라 관리자, 기술책임자, 테스터, 리크루터, 그 모든 것을 종합한 '경영자'의 이름이었다. 일본의 기업들은 그 이름에 가중치를 부여해 삼성의 경쟁력이 소니와 도시바를 앞서게 됐다고 개탄했다. 수줍고 고독한 사유는 통찰력으로, 뜯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몰입은 삼성 특유의 엔지니어 정신으로 빛을 발했다.



그렇게 자신과 삼성을 완성해온 그가 결국 무대를 내려오고 있다.

10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417호 형사대법정 삼성사건 결심공판.

법적이든, 도의적이든 모든 책임은 내가 지는게 맞다고 했다. 20여년간 정성과 혼을 다바친 삼성의 임직원들이 용기를 잃지 않도록 격려해 달라고 했다. 그는 차분하면서도 건조한 목소리로 준비한 글을 읽어 내려갔다. 최후 진술이었다.


경영자 이건희의 '페이드 아웃(fade-out)'. 그의 말대로 혼을 불어넣은 20여년의 세월이 함께 어두운 화면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의 퇴장은 우리가 강요한 유일한 해법이었다. 들추고 또 들춰냈다. 그렇게 물러나라고 10년을 몰아세운 끝에 결국 그를 물러나게 하는데 성공했다.

드라마틱하게도 그 시점은 금융, 부동산, 자원이 난마처럼 얽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워 진 경제위기 상황. 삼성이, 한국경제가 가장 그를 필요로하는 절묘한 순간에 우리는 그를 무대 밖으로 밀쳐내고 만 것이다.

그래서 거대기업 삼성의 오너를 이겼다는 쾌감의 반대쪽에는 우울한 상실감이 자리잡고 있다. 세계가 인정하는 글로벌리더로 한국에서 '이건희'만한 이름을 어디서 찾을 수 있으랴.

결정적일 때마다 던져진 그의 선문답 같은 한마디가 삼성을 움직이고 재계와 사회를 바꿔왔다. 지금쯤 그는 대혼돈의 바다위에 비춰줄 섬전 같은 지혜와 통찰을 가슴한켠에 묻어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건희 개인은 퇴장하고 우리는 잠시 정서의 위안을 얻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냉정히 계산해 보면 그것으로 교환하기에는 영 망설여지는 훨씬 더 큰 가치를 잃었다. 그 속없는 거래의 대가를 당장 올해부터 치르게 되지 않을까 두려울 뿐이다.

다시 417호 법정. 두번째 피고 이학수(전 삼성 전략기획실장)가 재판장에 머리를 조아리며 말을 이었다.

이회장은 인재양성과 기술개발에 몰두했고, 재산관리는 우리(부하임직원들)에게 맡겼다고 했다. 그래서 이렇게 이회장을 법정에 서도록 만든 책임에, 직전 공판에서 내비친 이회장의 눈물에 송구하고 가슴이 미어진다고 했다. 지치고 병든 회장에게 관용을 베풀어 달라고 했다.

특별검사는 이회장에 징역 7년, 추징금 3500억원을 구형했다. 방청석 어디선가 "너무 약한 거 아냐"하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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