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취련사는 제2제강공장 내 취련사 평가에서 2004년부터 4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2006년 12월에는 `무결함 취련 2000차지(charge)'란 대기록을 달성했다. 2000회의 취련작업 동안 한번도 결함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30년 역사를 자랑하는 포항 제2제강 공장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기간으로 따지면 약 4년, 웬만한 베테랑 취련사도 1, 2개월에 한번쯤은 크고 작은 실수를 하는 점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기록이다.
2000회·6000억원어치 '무결함' 쇳물 생산
◇불꽃을 보고 듣고=지난 9일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만난 김 취련사는 여전히 쇳물과 씨름하고 있었다.
처음 용광로에서 나온 쇳물에는 탄소가 많이 들어 있고, 인과 유황 같은 불순물이 섞여 있다. `용선'으로 불리는 이 쇳물의 탄소 함유량을 1% 이하로 낮추고 불순물을 없애는 일이 취련(吹鍊)이다. 각기 다른 용도와 고객사의 요구에 맞게 쇳물의 성분과 함량을 조절해야 한다. 쇳물에 생명과 개성을 불어넣어 제품의 품질을 결정짓는 작업인 셈이다.
취련사들은 불꽃의 색깔만 봐도 1600~1700℃의 온도를 정확히 읽어내야 한다. 쇳물을 가열하는 전로에서 나오는 불꽃의 형태와 소리만으로도 탄소 함유량을 알 수 있어야 한다.
불꽃이 네모난 모양이면 탄소가 0.2%, 사다리꼴 모양이면 0.08%, 삼각형 모양이면 0.04%, 이런 식이다.
그만큼 오랜 숙련을 거쳐야 취련사로 탄생할 수 있다.
첨단 계측시스템이 속속 도입되고 있지만 여전히 취련사들의 노하우는 중요하다. 취련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변수를 정밀한 기계들도 다 계측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탄소 농도가 높을 때는 검붉은색을 띠고, 농도가 낮아질수록 밝은색으로 변한다"며 "취련 말기에도 검붉은 색이 나오면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제어실에서 취련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생산하는 제품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저가원료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취련을 해야 하는 쇳물의 질도 편차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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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련이 막바지에 이르자 현장작업이 시작됐다. 김 취련사를 따라 공장 안으로 들어서자 1670℃의 쇳물이 뿜어내는 열기에 숨이 턱 막힌다. 거대한 설비들이 움직이면서 내는 굉음에 귀까지 다 먹먹하다.
그가 하루에 뽑아내는 쇳물은 약 3000톤. 이를 위해 하루에 10번은 작업장을 드나들어야 한다. 10여분 전로를 들여다보며 작업을 하던 그가 일을 마치고 작업장을 나가자고 손짓한다. 그의 작업복에 어느새 뽀얀 먼지가 쌓였다.
"그래도, 전로 속에 모든 답이 있어요." 그가 현장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다.
◇쇳물 맛을 알다=그도 처음부터 취련의 고수는 아니었다. 실수가 많았다. 뭐가 뭔지 몰라 기계적으로 일을 한 게 대부분이었다.
"쇳물의 맛이랄까요? 그런 게 있더라고요. 5년쯤 하니까. 취련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업 과정에선 집중력을 강조한다. 그는 "세계랭킹 1위와 10위의 차이는 미미하지만 결국 차이는 집중력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회사 고위관계자가 온 것도 모르고 일을 하다 오해를 산 일도 여러 번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할 수 있는데 취련의 매력이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취련을 마치고 후공정을 거쳐 만들어진 제품에는 취련사의 고유 코드번호가 매겨진다. 이 코드만 보면 누가 취련을 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지나다가 무너진 교량이 하나 보여도 남의 일 같지가 않다. 그는 "무너진 다리를 보면 우리가 잘못 뽑아낸 것 아니냐는 농담을 주고 받기도 한다"고 했다.
8시간의 근무시간에 10회의 취련을 소화하려면 근무시간 내내 쉴 틈이 없다. 그래서 취련사들의 식사는 초고속이다. 대부분 도시락으로 5분 내에 후딱 해치운다. 빨리 먹는 일이 습관이 되다보니 집에서도 민망한 일이 잦다. 아내가 밥을 차리고, 앉아서 밥숟가락 뜨면 어느새 남편은 사라지고 없다.
↑현장 작업 모습. 섭씨 40도씨를 웃도는 작업장을 수시로 드나들어야 한다.
포스코의 고민은 김 취련사처럼 최고 실력을 가진 직원이라도 특별한 보상을 해주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거대한 장치를 활용해 수많은 직원이 때로는 교대로, 때로는 함께 작업을 해야 하는 제철업의 성격상 차별적인 급여 지급이 쉽지 않다.
그는 "물질적인 것 외에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최고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후배들을 생각하면 보상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도 한다. 어렵고 힘든 길을 가면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줘야 동기부여가 된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지난 4월1일 포스코 창립기념일에 모범직원상을 받았다. 1만7000명에 달하는 포스코 직원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다. 2005년부터는 인재개발원 기사급 신입사원 직무기초교육 강사로 나서고, 사내 사이버교육 교사로도 활약한다.
이미 최고의 위치에 오른 그에게 다음 목표를 물었다. 뜻밖에도 회사 걱정이다.
" 무결함 기록을 세운 것도 선배들 덕분입니다. 선배들이 심어놓았는데 제가 열매를 딴 것에 불과합니다. 후배들도 저처럼 열매를 딸 수 있게 회사 자체 경쟁력을 유지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자가 우위를 차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후배들도 이 회사에서 계속 밥 벌어 먹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생산·사무직 평등 '기술 포스코의 힘'
포스코맨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철강 기술인력의 산실이 될 수 있었던 이유로 기술자들의 가슴 속에 뿌리깊이 박혀있는 '국내 최초의 철강산업 역군'이란 자부심을 1순위로 꼽는다.
포스코가 처음 용광로를 가동한 1973년 당시엔 국내 철강인력이 사실상 전무했다.
박정희 전대통령이 경제발전의 초석을 다지기 위해 '제철강국'이란 기치 아래 포스코(포항제철)를 세웠지만 정작 이렇다할 매뉴얼조차 없었다.
포스코의 한 관계자는 "당시 기술자들은 `내가 국내 철강산업을 일으킨다"는 자부심 하나로 모든 어려움을 견뎠다"며 "해외연수를 가면 금지된 사진을 몰래 찍어오거나 도면을 빼내오기까지 하면서 치열하게 기술을 익혔다"고 말했다.
이같은 역사를 거치면서 포스코에선 `기술이 가장 중요하다는 전통이 자리잡게 됐다'는 것이다.
기술을 중시하는 전통과 자부심을 이제는 시스템이 뒷받침한다. 이중 대표적인 게 기술직과 사무직의 임금 차별을 없앤 '단일호봉제'다.
포스코에는 생산직과 사무직 구분이 없다. 기술자를 차별해선 미래가 없다는 인사원칙이 반영된 것이다. 대졸 직원과 고졸 직원도 출발만 다를 뿐 똑같은 호봉제가 적용된다. 고졸 신입은 4호봉, 고졸 군필이면 5호봉부터 시작되고, 대졸 신입은 8호봉, 대졸 군필이면 9호봉이다. 대졸과 고졸의 호봉차는 4년, 대학 재학기간 4년을 빼면 똑같다. 대졸 직원들은 승진이 빠르고, 생산직은 수당이 많은 점 등 차이가 있지만 더하고 빼면 손에 쥐는 급여는 거의 차이가 없다. 대졸 사무직원들 사이에서 "차라리 공고에 들어갈 걸"하는 푸념이 나올 정도다.
올해 초 도입된 `기능전수 리더제도'도 포스코가 자랑하는 기술인력 양성시스템이다. 이는 퇴직을 1년 앞둔 기술자 중 우수인력을 분야별로 선정, 1년간 후배 양성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한 제도로 대상자로 선정되면 현업에서 완전히 빠져 기능전수에만 몰두할 수 있다. 일명 '분신 만들기'로 불린다. 현재 기능 전수 리더로 뽑힌 전문가가 포항에만 10명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