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노동영 박사, 최윤보 여사, 노관택 박사. ⓒ노관택 박사 가족 제공
아버지는 젊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시골집에 나타날 때마다, 사람들은 밤낮 없이 찾아들곤 했다. 아버지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들에겐 소중했다.
가문의 명예와 성공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집안을 부러워할 것이다. 아버지 노관택 박사(78)는 아시아에서 청각학과 중이염 치료의 선각자, 아들 노동영 박사(52)는 국내 유방암 수술의 최고 명의로 꼽힌다.
그의 집안은 큰 부자는 아니었지만 대대로 존경 받았다. 노동영 박사의 할아버지는 고(故) 노진환 옹으로, 그는 울산군 온산면에서 존경 받는 유학자이자 초대 민선면장이었다.
노동영 박사의 외갓집도 유학자 집안이었다. 어머니 최윤보 여사(74)의 할아버지인 고 최봉식 옹은 제헌국회의원을 지냈다. 최 여사의 부친, 고 최영대 옹은 도쿄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해방 후에 옥계중학교를 설립해 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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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의사, 지도자로 대를 이어 존경 받는 집안인데도, 당사자들은 자신과 가족에 대해 너무나 '쿨'하게 말했다.
아버지 노 박사는 아들이 의대 대신 공대를 가길 바랐다고 했다. 의사는 고된 일이니까.
아들 노 박사는 자신의 1남2녀가 의사를 배우자로도 선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가족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할테니까.
아버지 노 박사는 정년퇴임한 지 1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1주일에 이틀은 병원으로 출근한다. 청각학 분야 1인자가 퇴직 후 선택한 직장은 경기도립의료원 산하의 작은 시골병원이었다.
입원환자 40%가 저소득층인 파주병원으로 간 우리 시대의 명의는 희수(喜壽)가 지난 요새도 하루에 20여 명의 환자를 본다.
아들 노 박사는 주말 휴식을 건너뛰면서 지낸 지 오래다. 유방암 수술은 물론 환자들 모임과 상담까지 직접 챙기는 탓이다. 2000년부터 그가 환우회 홈페이지에 올린 답변만 해도 1만5000여건에 이른다.
유방암환우회 '비너스회'의 이병림 회장은 "노 교수는 환우들의 우상"이라며 "수술 받은 후 수년 간 진료를 받고 있지만 초지일관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모습에 늘 감동 받고 있다"고 말했다.
노 박사 부자에게 의사는 돈 많이 벌면 그만 둘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살아있는 한 수행해야 할 천직이다. 그들이 지닌 재능은 의술이 아니라 인술(仁術)이다.
자신의 천직을 찾아 그 책무를 다하는 것. 이것이 노 박사 가족이 대대로 존경 받는 비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