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언, 충신(忠臣)과 양신(良臣) 사이

머니투데이 박재범 기자 2008.06.13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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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의 여의도 편지]

편집자주 별명이 '제비'입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릅니다. 친구들이 그렇게 불렀습니다. 이유도 명확치 않습니다. 이름 영문 이니셜 (JB) 발음에 다소 날카로운 이미지가 겹치며 탄생한 것 같다는 추측만 있을 뿐입니다. 이젠 이름보다 더 친숙합니다. 동여의도가 금융의 중심지라면 서여의도는 정치와 권력의 본산입니다. '제비처럼' 날렵하게 서여의도를 휘저어 재밌는 얘기가 담긴 '박씨'를 물어다 드리겠습니다.

# 4.9 총선을 약 보름 정도 앞두고 한나라당 당사 기자실에 총선 후보자들이 몰려 들었다.

표정은 비장하고 심각했다. 손에는 성명서가 쥐어져 있었다. 요지는 이상득 의원의 불출마 촉구. 55명이 동참했다. 대통령의 형님을 향한 '55인의 반란'이었다.

55명에는 '이재오계'로 불리는 인사들이 많았다. 대통령을 형님으로 부르는 이와 대통령의 형님간 권력 싸움으로 비쳐졌다.



반란의 한 축에 또 한 사람이 있었다.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던 정두언 의원이다. 당시 정두언이 남긴 말은 지금도 회자된다. 그는 스스로를 "충신" "생육신"이라 칭하며 이렇게 말했다.

"권력 투쟁으로 몰고 가는 시각은 잘못됐다. 굳이 얘기하면 충신들이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충신은 주군만을 생각한다. 주군을 위하는 척 하면서 자기 자신을 위하는 게 간신이다. 나는 내가 충신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보면 충신들이 일시적으로 패배할 수는 있어도 결국에는 항상 승리한다"
정두언, 충신(忠臣)과 양신(良臣) 사이


# 시간이 두 달 조금 더 흘렀다. 그 사이 이재오는 미국으로 떠났다. 반면 대통령의 형은 그 자리 그대로였다.



정두언이 다시 나섰다. 충신의 2차 도발이다. 이번엔 청와대 3명과 국회의원 1명을 지목했다. 그 중 한명은 이미 짐을 쌌고 또 한 명은 짐을 싼 채 나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안 되는 모양이다. 칼날은 대통령의 형님을 겨누고 있다.

생육신의 말은 이렇다. "나는 내가 손해 보는 것은 참아도 사리에 맞지 않는 것은 못 참는다." "게다가 성질 급한 놈이 밥값 낸다고, 제가 밥값을 잘 내는 편이다. 이번에도 제가 밥값을 미리 낸 셈이다"….


"충정에서 얘기한 것"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충정이 대한민국의 어느 누구 못지않다"고도 했다.

# 그렇다면 '충신'은 선일까. 중국 최고의 명재상으로 평가 받는 위징의 말을 들어보자.

직언으로 유명한 위징이 당 태종에게 아뢴다. "저를 양신(良臣)이 되게 하시고 충신(忠臣)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태종이 놀라 곧바로 물었다. "대체 충신과 양신의 차이가 무언가".

"차이가 아주 큽니다. 양신은 스스로 후세에 추앙되는 이름을 얻습니다. 군주에게는 거룩한 천자라는 칭호를 받게 합니다. 가계가 끊이지 않는 복도 계속됩니다.

하지만 충신은 결국 미움을 사 자신은 물론 일족이 모두 몰살당합니다. 그 군주는 폭군이란 악명을 얻습니다. 오로지 자신이 충신이었다는 이름만 후세에 전해질 뿐입니다".

충신은 주군을 위한다 하지만 결국 주군과 자신 모두를 망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주군만 위하는 충신이 아니라 자신과 주군, 나라를 모두 살게 하는 양신이다. 그런데 지금은 대통령의 형님이건 측근이건 '양신'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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