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이야기]가슴이 아픈 사람들

머니투데이 채원배 기자 2008.06.12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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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이야기]가슴이 아픈 사람들


# 강북에 사는 30대 무주택자 이모씨. 그는 요즘 강북 집값이 오른 것을 보면 억장이 무너진다.

올들어 이른바 '노도강(노원 도봉 강북구)'을 시작으로 강북 집값이 급등하면서 그는 내년쯤 내집을 마련하겠다는 꿈을 접었다. '뉴타운이다 재개발이다'해서 서울 대부분지역의 지분값이 3.3㎡당 3000만원을 호가하고 있는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그는 "이전에 강남 집값이 급등할 때는 배가 아팠는데, 요즘 강북 집값이 오른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 중견건설업체 임원 박모씨. 미분양 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그는 증권가나 사채시장에서 자금난에 처한 기업의 이니셜이 나올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린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가 중견업체치고는 나름대로 탄탄하다고 생각하지만 미분양에 따른 유동성 문제를 피해갈 수 없기 때문.

그는 "건설사중에서 이니셜이 같은 곳이 많아 부도설이 나올 때마다 곤혹을 치른다"며 "미분양 대책이 나왔지만 기대에 못 미쳐 (미분양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답답할 뿐이다"고 말했다.



2008년 6월. 부동산 때문에 가슴 아픈 사람들의 다른 듯 같은 모습이다. 주택 수요자 이 씨는 급등한 집값 때문에, 공급자 박 씨는 미분양 때문에 속을 썩고 있다 각자 처해진 상황에 따라 고민하는 내용은 다르지만 '부동산'때문에 가슴 아프기는 매 한가지다.

사상 최대의 미분양과 지분값 급등. 양립할 수 없을 것같은 2가지 현상이 부동산시장에서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경기가 침체되고, 외환위기 때보다 더 심한 미분양 사태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강북 집값과 '무늬만 재개발'지역의 지분값이 급등했다. 경기 침체 여파와 세제 및 금융규제 등으로 강남불패 신화가 막을 내린 것과는 대조적이다.

수요자와 공급자가 같이 고통받는 상황. 이건 분명 시장 실패다. 집값 이상급등지역의 문제를 단순히 일시적· 국지적인 현상으로 볼 순 없다.


강북에 위치한 '무늬만 재개발'지역의 반지하 지분값이 3.3㎡당 2000만~3000만원에 달하는 것은 참여정부 때보다 버블이 더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그런데도 이 지역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10년앞을 내다본 투자"라고 말한다. 뉴타운이나 재개발이 언제 될지도 모르고, 설령 된다 하더라도 지분값이 턱없이 높아 손실을 볼 수 있는데도 말이다.

'언젠가는'에 기댄, 뉴타운·재개발 신앙이 빚어낸 땅값 급등은 원자재값 상승과 맞물려 고분양가로 이어지고 있고, 이는 또 미분양으로 연결되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정부는 사상 초유의 미분양 사태 원인을 수요 예측을 잘못하고 고가에 분양한 건설업체 탓으로 돌리지만 그렇게 말해서는 안된다. 물론 건설업체에 일정부분 책임이 있지만 이런 악순환을 낳게 한 정부의 책임이 더 크기 때문이다. 경기 상황에 따라 냉탕과 온탕을 오가면서 수시로 바뀌었던 부동산정책이 시장을 망가뜨린 것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부동산 때문에 '가슴이 아픈'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듣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원인과 문제점을 처음부터 다시 짚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또한 그 출발점은 부동산시장을 살리는 것이어야 한다. 시장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곳에서는 투기와 편법이 판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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