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차 맞은 토종PEF]①아직 갈 길이 멀다

더벨 현상경 기자 2008.06.11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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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블랙스톤 목표로 정책적 추진...쓸만한 딜 못 찾고 트랙레코드도 부실

이 기사는 06월10일(12:12)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국내에 사모투자펀드(PEF)가 도입된 지 올해로 4년이 됐다. "장기자금을 조달해 기업경영 성과를 높이고 지배구조를 개선한다"는 취지 아래 그동안 50여개 펀드가 설립됐고 9조원이 넘는 돈이 마련됐다.



하지만 토종 PEF의 '성과'를 거론하기에는 트랙 레코드(track record), 펀드규모, 포트폴리오 배분, 해외진출여부, 유한책임사원(LP)과 무한책임사원(GP)간 관계 등 모든 분야에서 미진한 부분이 많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붙여준 '자본시장의 새로운 제왕'(The new kings of capitalism)'이란 칭호도, PEF의 뒤에 언제나 따라다니는 '기업사냥꾼'(Corporate raider)이란 악명도 아직은 어울리지 않는다.



초창기엔 은행이 주도, 이후 독립 PEF 등장

국내 PEF 설립은 2004년12월27일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의 '미래에셋1호'를 기점으로 시작됐다. 초창기엔 우리은행,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 금융권의 자금력을 등에 업은 PEF 설립이 시장을 주도했지만 이후 보고펀드, MBK파트너스 등 PEF 독립군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4년차 맞은 토종PEF]①아직 갈 길이 멀다


해외와 달리 국내 PEF는 시장의 필요에 의한 탄생이 아니라 정책적 당위성에 입각해 인위적으로 도입됐다. IMF이후 외환은행 매각과정 등에서 론스타 등의 '위명'에 몸서리쳤던 정부가 외국자본에 대한 대항마로서 토종PEF를 필요로 했다.

실제 재정경제부가 'PEF 활성화를 위한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 개정방향'을 제안했던 2004년 5월 당시는 자신의 이름을 딴 사모펀드 설립까지 고려하며 토종자본 육성을 입버릇처럼 부르짖던 이헌재 씨가 경제부총리로 재직하던 시기였다. 정부가 나서 한국판 블랙스톤이나 KKR의 탄생을 독려한 셈이다.


그래선지 사모펀드로 불리워지는 대상의 범위도 다르다. 미국의 사모펀드는 투자회사법(The Investment Company Act of 1940)에서 규정한 공모펀드 이외 모든 간접투자기구를 일컫는 용어인 반면, 국내에서는 관련법령에 '사모주식투자회사' 형태를 명확히 규정해 모집한도, 참여자 자격, 투자대상 등을 일일이 규정해 놓았다.

정부주도 한계 여전...일부 운용사, 쓸만한 딜 못 찾아 고심

그간 국내 PEF는 다수의 M&A딜에서 핵심 플레이어 역할을 해왔다. 미래에셋, MBK파트너스 등 대형PEF는 대우건설, LG카드, 하이마트 등 가격경쟁이 심한 공개경쟁입찰 방식(Auction Deal)에서도 대형 PEF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3년6개월 가량 국내 PEF의 궤적은 성과보다 한계를 더 많이 드러냈다.

우선 운용사별로 이렇다할 트랙 레코드를 내놓을 곳이 많지 않다. 굵직굵직한 기업을 대상으로 한 바이아웃(Buy Out) 딜을 성사시킨 펀드들도 있지만 상당수 펀드들은 수익률 제고를 위해 억지춘향식의 투자를 하는 곳이 적지 않다.

투자대상을 찾지 못해 자금을 놀리는 운용사도 상당수다. 금융감독원이 올 2월말 기준으로 집계한 바에 따르면 국내 PEF의 출자액 9조4503억원 가운데 실제 쓰인 금액은 4조8861억원으로 절반 정도다. 업계 관계자는 "투자할 곳을 못찾아 같은 딜을 두고 여러 업체가 달려드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토로한다.

관(官) 주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부분도 많다. 정부는 제도 도입 당시 PEF의 해외투자를 '해외기업 주식'으로 한정했다가 작년말에야 해외부실채권(NPL)투자를 허용했다. NPL은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IB들이 한국에서 많은 수익을 낸 투자대상이다.

3년동안 해외에서 투자대상 발굴(Deal Sourcing)역량을 확보한 운용사는 손에 꼽을 정도다. 역외 특수목적회사(SPC)설립도 작년말에야 허용됐지만 이미 몇몇 PEF들이 해당 규제 때문에 투자기회를 수차례 놓친 뒤였다.

펀드 규모도 되레 줄고 있다. 2006년 중반까지만 해도 최소 3000억원 이상의 펀드가 전체 펀드의 40%에 가까웠다. 그러나 지난해부터는 4~5개 펀드를 제외한 나머지 30여개 가까운 펀드가 전부 1000억원 안팎이거나 그 미만의 소형펀드들이다. 투자기업을 골라내 바이아웃 딜을 성사시킬 대형펀드는 점점 줄고 있다.

GP와 LP들간의 관계 설정은 아직까지 글로벌 PEF에 견줄 바가 못된다. 펀드 설립은 줄을 잇는데 자금을 제공할 기관은 한정되다보니 LP들이 좌지우지하는 시장이 됐다. 이름값을 쳐줄 수 있는 대표 GP도 아직 등장하지 못했다.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은 한결같다. 이제 간신히 초보자 수준은 넘겼지만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한국판 블랙스톤이나 KKR은 아직까지 요원한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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