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 바빠", '개념찬 네티즌' 나촛불씨의 하루

머니투데이 박종진 기자 2008.06.10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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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일 시작된 촛불시위가 벌써 한 달을 훌쩍 넘겼다. 네티즌들의 운동방식은 점점 더 진화하고 있다.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각종 '저항'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들에게는 '개념찬 네티즌'이란 호칭이 붙는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여기저기 항의 전화하랴 서명운동에 모금까지 하는 개념찬 네티즌들은 하루가 너무 짧다. 개념찬 네티즌인 나촛불(28. 여성)씨의 일상을 쫓아가 봤다.



↑ 한 네티즌이 촛불시위 등으로 바빠서 설거지도 못하고 있다며 올린 사진↑ 한 네티즌이 촛불시위 등으로 바빠서 설거지도 못하고 있다며 올린 사진


'물대포 사용지침'까지 공부해야

나촛불 씨는 오늘도 헐레벌떡 출근길에 나섰다. 인터넷 생중계로 촛불시위를 보다 잠이 들었다. 버스 안에서 DMB로 뉴스를 보니 간밤에 연행자 소식이 들려온다.



다행히 지각은 면했다. 컴퓨터를 켜고 업무 관련 인터넷 창 옆으로 또 다른 창, '전쟁터'를 띄웠다. 전쟁터는 다름 아닌 쇠고기 관련 사이트다. 몸은 직장에 있어도 인터넷으로 할 수 있는 활동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에게 '쇠고기전쟁'은 늘 진행 중이다.

먼저 지령을 받아야 한다. 수많은 네티즌들이 지휘관이다. 다음 아고라는 물론 화장품 카페, 여성 포털 등 나촛불 씨에게는 '배후'도 많다. 주제가 정치와 상관없는 인터넷 카페들마저 촛불시위에 발 벗고 나섰기 때문이다.

로그인을 마치고 최신 인기 글을 한번 훑는다. 오늘의 '이슈'가 눈에 들어온다. 관련기사까지 함께 보며 '공부'를 시작한다. 네티즌들의 친절한 댓글도 도움이 된다. 벌써 한 달간 '헌법 제1조', '장관고시', 'vCJD', 'SRM', '집시법', 'GATT 20조' 등 전문지식들을 고3이 된 듯 공부했다. 최근에는 '6월 항쟁 역사'에 '물대포 사용지침'까지 익혔다. 학습량이 과하다. 더구나 직장 업무까지 겸해야 하니 쉴 틈이 없다.


그러나 공부를 해야 논리가 생기고, 논리가 생겨야 토론방에 글도 쓰고 여기저기 댓글도 달 수 있다. 행여 이전 댓글을 누군가 지우지 않았나 수시로 살피기도 한다. 자신의 글이 삭제 당했다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글 몇 개 달고 이날 새벽 폭력진압 사진 몇 장을 이곳저곳 사이트에 옮겼더니 벌써 점심시간이 가까워온다. 바삐 온라인을 누볐지만 아직 나촛불 씨는 '오늘의 숙제'를 하지 못했다.

틈틈이 항의전화에 모금운동까지

점심을 얼른 먹고 보수신문에 광고를 낸 기업들에게 항의 전화를 돌리는 '숙제'를 시작했다. "고객이 벌어다 준 돈으로 왜 시민들의 뜻에 반하는 언론사에 광고를 주느냐"가 핵심이다. 매일 아침이면 몇몇 타깃 기업들 목록이 전화번호와 함께 올라온다. 나촛불 씨는 부장의 눈치를 보며 간신히 '숙제'를 끝냈다.

오후에는 일이 밀려 좀처럼 시간 내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몇 군데 들러 온라인 서명을 했다. 각종 구명에 청원, 사퇴촉구 서명들이 하루에도 몇 개씩 새로 생겨 일일이 챙기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요즘은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모금운동에 신경을 쓴다. 회원으로 있는 화장품 카페에서는 이미 진보적 언론에 광고도 실었다. 김밥, 생수, 각종 옷가지 등 밤샘 시위에 필요한 지원물품을 온라인상에서 모금하면 그때그때 입금도 한다. 그래야 나촛불 씨는 마음이 좀 편하다.

밤샘시위에 다크서클 깊어져

업무를 빨리 끝낸다고 했는데 저녁 7시가 넘었다. 서울시청 앞 광장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주말이라 밤을 샐 계획이다.

특히 이날은 나촛불 씨가 '개념찬 언니'로서 처음 나가는 날. 10대 촛불소녀들이 배후를 의심받으니 언니들이 나서 배후가 돼주기로 했다. 몇몇 인터넷 동호회가 뭉쳤다. '개념찬 그대들의 배후세력이 되어주마'라는 스티커도 수천 장 만들었다.

문득 시청으로 향하는 지하철에서 거울을 보니 눈가에 '다크서클'이 부쩍 늘었다. 집에 쌓여있는 설거지며 청소거리도 떠올랐다. 마음 편히 주말에 쉬어본 지도 오래됐다.

"휴~" 나촛불 씨는 힘들다. 앞으로 5년 동안 이 짓은 못할 듯하다. 어쩌면 그래서 나촛불 씨가 지금 열심히 촛불을 켜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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