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마한 고위인사를 위한 '변명'

머니투데이 박재범 기자 2008.04.29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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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의 여의도 편지]

편집자주 별명이 '제비'입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릅니다. 친구들이 그렇게 불렀습니다. 이유도 명확치 않습니다. 이름 영문 이니셜 (JB) 발음에 다소 날카로운 이미지가 겹치며 탄생한 것 같다는 추측만 있을 뿐입니다. 이젠 이름보다 더 친숙합니다. 동여의도가 금융의 중심지라면 서여의도는 정치와 권력의 본산입니다. '제비처럼' 날렵하게 서여의도를 휘저어 재밌는 얘기가 담긴 '박씨'를 물어다 드리겠습니다.

# 석달새 4명의 장관급 인사가 물러났다. 대통령이 직접 변호해도 소용없었다.

2008년의 일이 아니다. 2005년초의 상황이다. 3년전 연초부터 불거진 고위공직자들의 잇단 낙마는 대한민국을 흔들었다.

이기준 전 교육부총리는 닷새 만에 물러났다. 서울대 총장 시절 사외이사 겸직과 장남의 한국 국적 포기, 경기도 땅 투기 의혹 등에 백기를 들었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부동산 투기 의혹과 위장전입 의혹으로 낙마했다. 최영도 전 국가인권위원장의 경우 부인의 경기도 땅 위장전입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강동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은 처제 친구의 부동산 매입 의혹이 불거지자 옷을 벗었다. 청와대의 인사검증 시스템이 도마 위에 올랐다.



당사자들의 억울함은 뒤로 하더라도 현실을 무시한 과도한 잣대라는 볼멘소리도 있었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부동산 투기를 안 한 이를 찾기 힘들다"는 말까지 했다.

그러나 민심은 냉정했다. 가차없이 '레드카드'를 꺼냈다. 당시 인사 책임자였던 박정규 민정수석과 정찬용 인사수석도 동반 퇴장했다.

# 벌써 네 명째다. '레드카드'를 받고 그라운드를 떠난 이명박(MB) 대통령의 선수 숫자다. MB가 취임한지 이제 두 달 남짓 지났으니 속도가 참 빠르다.


박은경 환경, 남주홍 통일, 이춘호 여성부 장관 내정자 등은 초기 멤버다. 이번엔 청와대에 있던 사람이 물러났다. 내정 때부터 뒷말이 많았던 박미석 사회정책수석이다.

정권이 바뀌었고 사람이 바뀌었는데도 상황은 3년전과 별반 다름없다. 사퇴 이유는 대부분 부동산 투기 의혹이다. 위장 전입 등도 뒤따라온다.

당선자들은 역시 "억울하다"고 외친다. 배우자가 한 일, 부모에게서 상속받은 것 등 변명도 비슷하다. 청와대의 검증 시스템을 비판하는 것도 똑같다.

청와대 관계자는 또 항변한다. "노무현 청와대가 보유했던 인사 파일에 제대로 접근할 수 없었고 제한된 인력으로 수작업 검증을 하다보니 어려움이 있었다"라고.

그러나 냉정한 민심 역시 같았다. 퇴장 명령은 어김없었다.

# 반칙에는 '레드카드'가 당연하다.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이중국적…. 각종 편법과 불법에 대한 페널티는 원칙이다. 헌데 허전하다.

"앞으로 반칙을 하지 말라"는 취지에는 공감이 가지만 이미 행한 반칙은 어떻게 하면 씻을 수 있는지에 대한 해법이 없다.

여당의 고위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과거에는 고위 공직자 자신의 편법, 불법 행위가 문제가 됐다. 그런데 이제 갈수록 공직자 부모 세대가 문제가 된다. 그 당시 으레 그랬기에 했던 일들이 자식들의 발목을 잡는 꼴이 된 것이다. 이 선수들은 아예 대표 선수로 발탁할 수 없단 말인가."

편법과 불법 행위에 대해 변명 하고픈 마음은 없다. 다만 과거 으레 행해진 행위에 대한 사회적 결단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얘기다. 글로벌 시대에 맞지 않는 이중국적 논란 등도 이참에 정리할 필요가 있다.

3년 전 낙마했고 2008년 낙마했기에 앞으로도 줄낙마하는 게 일견 '일관'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한 흔들림과 소모적 혼란도 계속 감수해야 한다.

한국 기업이 관행으로 해왔던 분식회계를 털어내는 데 일정기간의 유예기간을 준 적이 있다. 개인에게도 고해 성사할 기회를 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물론 그 결단과 제안은 대통령의 몫이다. 인사 파동에 대한 사과와 함께 미래를 향한 제안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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