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IB, 대우조선 M&A '물' 먹은 이유

더벨 박준식 기자 2008.04.23 08:15
글자크기

딜 설계ㆍ정보력 부족..매각주관 도전 4개사 초반탈락

이 기사는 04월22일(13:59)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국내 투자은행(IB)들이 이번에도 '물'을 먹었다.



대우조선 (32,750원 ▲1,150 +3.64%)해양 매각 주관사를 노리고 우리투자증권, 삼성증권 (46,650원 ▼850 -1.79%) 등 4개사가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이들은 모두 초반 탈락했다.

대우조선해양 매각은 최소 6조원 규모가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메가 딜'이다. 국내에서는 몇년에 한 번 등장하는 대규모 M&A로, 국내IB들의 선전이 기대됐지만 본선에는 명함도 내밀지 못한 셈이다.



이러다보니 증권업계에서는 판정불복성 불만도 나오고 있다.

일부 국내IB 관계자들은 "실력은 비슷한데 실적이 없기 때문"이라거나 "외국계 사대주의로 인해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금융자문 역량은 별 차이가 없는데 국내사에 대한 편견이 차별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이런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까.


소통력은 그럭저럭 = 외국계 IB 관계자나 그들과 같이 일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노(NO)'라고 대답한다.

기업인수합병(M&A) 자문시장에서 외국계를 선호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국내IB의 역량부족에 있다는 지적이다.



ⓒ the bellⓒ the bell


외국계 2개사의 IB 헤드를 거쳐 최근 사모투자펀드(PEF) 대표로 자리를 옮긴 A씨는 먼저 '딜 설계능력(Structuring)'의 부족을 지적했다.

M&A 자문과 관련한 IB의 역량은 실제로 자문을 실행하는 MD(전무)급과 이를 지원하는 분석 인력에 의해 결정된다. 이중 MD급의 실행력은 국내IB들의 주장대로 선진 수준에 근접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다.

고객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 딜의 진행과정마다 이를 반영하는 능력은 네트워킹과 정보력을 기본으로 한다. 개인역량에 따라 국내 인력도 기회만 주어진다면 이런 노하우를 충분히 쌓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원인력 실력부족 = 문제는 MD의 퍼포먼스를 지탱하는 지원 인력의 질적 차이다. 일반적으로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JP모건 등 글로벌IB 티어원(Tier-1, 선두) 그룹들은 홍콩의 아시아본부에 대규모 주둔군(?)을 보유하고 있다.

대부분이 명문 MBA(경영학석사) 출신인 이들 조사인력은 대우조선급의 딜이 시작되면 적게는 20명, 많게는 30명 가까이 자체적으로 팀을 꾸려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이들은 최신 분석기법을 동원, 동종업계와 비교한 매물의 가치를 평가하고 딜구조를 설계하면서 잠재인수자의 구미를 자극할 포인트를 짚어낸다.

특히 대우조선처럼 해외매각을 막아야 하는 케이스는 WTO(세계무역기구) 규정에 위배되지 않으면서도 해외기업의 무분별한 입찰을 막을 수 있는 논리를 제시해야 한다. 이들의 설계로 6조원짜리 딜을 7조, 8조원에 성사시킨다면 수수료를 100억원을 주든 1000억원을 주든 아깝지 않은 셈이다.



골드만삭스의 한국대표를 역임하다 최근 하나IB 대표로 부임한 이찬근 사장도 "초기엔 IB지원 인력들의 전문성도 문제였지만 이들이 모두 종적으로 배치돼 있다는 데 더 놀랐다"며 "분석인력을 횡렬로 배치하고 프로젝트마다 유연하게 이합집산할 수 있도록 재교육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보력 한계 = 메가딜에 대한 접근법도 문제이지만 정보력도 무시할 수 없다.

매수 자문의 경우 매도자 측이 제시한 평가기준에서 최고득점을 하기 위해서는 구조분석력과 경쟁자의 입찰내용을 파악하기 위한 정보력의 확보가 필수다. 포커판에서 상대방의 패를 읽는 능력이 있다면 백전백승하는 게 어렵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국내IB, 대우조선 M&A '물' 먹은 이유
국내IB의 경우 메가딜 경험이 전무하다. 그래서 정보력도 취약할 수 밖에 없다. 딜을 따내기 위해 언론플레이를 주도하고, 역정보를 흘리고, 어제의 경쟁자에게 연합을 제의할 수 있는 대담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육박전 경험이 없는 신병에게 장성급의 경호를 맡길 수 없다"고 비유한다. 국내사들의 주장처럼 단지 트렉레코드(실적)의 문제만은 아닌 셈이다.

대우조선 사례에서도 국내IB의 정보력 부재는 여실히 드러났다.



딜을 따낸 골드만삭스는 홍콩의 지원군을 부를 수 있는 메가딜 미니멈코스트인 300만 달러의 수수료를 마다하고 그 이하의 수수료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막판까지 경쟁을 벌였던 UBS도 평균 이하를 제시한 건 마찬가지였다는 후문이다.

글로벌 선두그룹이 올해 아시아에서 랜드마크가 될 수 있는 딜을 차지하기 위해 덤핑공세를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국내IB는 어땠을까. 산업은행 관계자는 "자문 제안서를 제출한 국내 4개사의 수수료는 상한캡 없이 업계 관행대로 딜 규모의 0.0X%라는 식으로 정해져 있었다"며 "국내 증권사들이 기회를 달라며 연신 러브콜을 보내고 있지만 국책은행 입장에서 업계 상황을 모른 채 수수료를 턱없이 높게 써낸 곳을 쓸 수는 없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한화오션 차트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