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천국은 없고 잔치는 끝났다

머니투데이 박종면 편집국장 2008.03.03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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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는 '타이스'라는 유명한 창녀이자 무희가 있었습니다. 뭇 남자들이 팜므파탈 타이스에게 빠져 도시가 휘청댈 정도였습니다. 이를 보다 못한 기독교의 젊은 수도사 아타나엘이 타이스를 개종시키기 위해 나섭니다.
 
수도사 아타나엘의 정성과 설교에 감복해 창녀 타이스는 기독교에 귀의하게 되고, 수녀원에 들어가 성녀가 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수도사 아타나엘이 타락하고 맙니다. 아타나엘은 타이스를 통해 여자를 알게 되고, 성욕의 포로가 돼버립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뒷골목에서 비참하게 일생을 마감합니다.
 
↑ 마스네의 오페라 '타이스'의 한 장면↑ 마스네의 오페라 '타이스'의 한 장면


프랑스를 대표하는 오페라 작곡가 쥘 마스네(Jules Massenet)의 오페라 '타이스'의 줄거리입니다.
 
오페라 '타이스'에는 마지막 대목에 수도사 아타나엘이 "세상에 천국 같은 것은 없다. 오직 지상의 애욕 만이 진실된 사랑이다"라고 절규하는 대목이 있지만 오페라를 보고 나면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지, 과연 누가 성자이고 누가 창녀인지, 위선과 진실의 경계는 어디인지 등 근원적 질문에 부딪칩니다.
 
쇼펜하우어가 '인생론'에서 말한 성욕에 대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성욕은 가장 진실된 일도 중지시키며, 위대한 정신을 혼란시킨다. 외교나 학술연구에 몰두해야 할 때도 성욕은 불쑥 나타나 판단을 그르치게 한다. 친구의 우정을 끊어버리고, 견고한 마음의 사슬을 풀어버리며, 정직한 사람을 철면피로 만든다. 남녀 간의 사랑이란 아무리 미화해도 성욕이 핵심이다."
 
마스네나 쇼펜하우어가 던지는 메시지는 인간의 이중성과 위선에 대한 고백입니다. 인생과 사랑에 대해 꿈을 깨라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꿈을 깨야 한다니까 지난 주말 미국의 투자 귀재 워런 버핏이 주주들에게 보낸 편지가 생각나네요. 이번 버핏 서한의 핵심은 한마디로 "투자자들이여, 꿈을 깨라"는 것이니까요. 버핏의 편지가 폐부를 찌릅니다.
 
"미국 사람들은 주택가격이 영원히 오를 것이라고 믿었지만 거품은 꺼졌고, 금융시장에서 행한 온갖 바보짓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주식투자를 통해 한 세기 동안 줄곧 연 10%의 수익을 얻고자 한다면 2100년까지 다우지수는 현재의 1만2000선에서 2400만선까지 상승해야 한다. 이 산식이 가능하겠는가. 해외 국부펀드가 미국 기업들을 사들이는 것은 미국이 초래한 것이지 외국정부의 음모가 아니다. 이제 잔치는 끝났다."

☞ 마스네의 오페라 '타이스' 명상곡 듣기

 
꿈을 깨야 하는 것은 미국 정부나 미국의 투자자들 만은 아닙니다. 한국의 투자자들도 주가 2000시대, 3000시대의 꿈을 깨야 합니다.



특히 새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7·4·7의 꿈'에서 빨리 깨어나야 합니다. 연 7% 성장과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위 경제대국은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고백한 대로 비전이고 꿈일 뿐입니다.
 
지난 1~2월 같은 경제상황이라면 올해 성장률은 5% 달성도 어렵고, 3%대로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세계 7위 경제대국이 되려면 국내총생산(GDP) 규모를 현재의 9000억달러 수준에서 1조9000억달러 정도로 끌어올려야 하는 데 이게 쉽게 될 일입니까.
 
정권만 바뀌면 모든 게 잘 풀릴 줄 알았지요.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요즘 실감하고 있습니다. '고소영'과 '강부자'와 '강금실'은 많아도 능력에 도덕성을 갖춘 장관을 찾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게다가 기름값에서 라면값까지 오르지 않는 게 없지요, 국제수지는 또 왜 이렇게 악화되고 있는지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부도 기업도 국민도 꿈부터 깨야 합니다. 잔치가 끝났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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