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미술시장에서 자연의 풍경을 꼭 같이 잘 그려낸 작품의 가격은 그리 높지 않다. 산이나 계곡 등이 예쁘게 그려진(화가의 감성보다 보기 좋음이 우선된) 풍경화는 투자적 관점에서 다소 멀어져 있음을 이해하자.
영국의 낭만주의 화가 윌리엄 터너(William Turner, 1775~1851)는 사람의 눈에 보이는 풍경에 자신의 감정을 실어 자유로운 색상과 느낌을 표현하였다. 인상주의와는 또 다르게 공기와 빛의 흐름과 같은 보이지 않는 부분을 사물의 움직임에 첨가하여 그렸다.
풍경화의 시작을 정확히 언제부터이라고 말할 수도 없거니와 사람이 그려진 그림은 풍경화인가 인물화인가에 대한 기준 역시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중세시대에는 자연의 정경보다 신화적 상황을 중시하여 눈에 보이는 인간적 배경은 중요하지 않았다.
17세기 이후 네덜란드에서부터 독자적 영역이 확보되면서 청빈함을 중시하던 신교도들을 중심으로 소박한 자연의 풍광을 그려내기 시작하였고 18세기 이후에는 로마와 베네치아에서 신흥 상인층이나 여행객들과 같은 수요자들을 위한 고향의 풍경 같은 것들이 자리한다. 19세기 이후 서양 풍경화는 자연에 대한 공감과 경외심을 가진 순수풍경의 것과 사회적 현실과 관련된 과학적 사고 안에서 일어난 사실주의적 풍경으로 크게 분리되어 현재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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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전통 풍경화는 산수화 또는 진경산수라고도 하는데 조선시대의 화가 정선(鄭敾, 1676~1759)에 의해 실재의 풍경이 그림으로 옮겨지기 시작하였다. 진경산수가 태동하기 이전까지는 중국의 영향에 의해 마음속의 풍경화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서양화가 도입되었지만 통치의 수단으로 특정한 풍경이나 감정이 배제된 목가적이고 개인 취향적인 풍경이 제작된다. 서양의 인상주의가 가진 사회적 성격보다는 외형적인 부분을 더욱 강조하기도 하였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인간 본연의 감정을 이해하는 현실적인 풍경화가 많이 그려지고 있다. 때문에 많은 풍경 화가들은 대자연과 호흡하면서 인간의 피안을 그리는 형식과 현실 참여적 상황을 인정해야만 하는 이중적 고민을 안고 있다.
김승현, 꿈꾸는 창, 91*72.7㎝, Acrylic on Canvas,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