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미국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이윤학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 2008.02.25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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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학의 시황분석]디커플링의 본질

세계화의 그늘

"미국의 돈이 있는 어떤 나라든지 그 경제는 점차 미국 지향적으로 될 것입니다."

황석영의 소설 '무기의 그늘'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데올로기보다 경제적 착취의 관점에서 부당하고 불편한 세계화에 대한 고발이었다.



최근 '세계화의 덫'에 대한 경고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미국이 경기침체를 수출하고, 중국이 인플레이션을 수출해 글로벌 경기침체(Global Recession)가 가속화되고, 전세계는 결국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할 것이라는 경고이다.

만약 지구상의 지역경제가 세계화되지 않았던 20세기 초 중반이었다면 이러한 글로벌리세션과 스태그플레이션은 발생하지 않았거나, 최소한 그 파괴력은 줄어들었을 것이라는 볼멘 목소리도 있다.



지난 수년간 세계경제를 우려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화두는 글로벌 임밸런스(Global Imbalance)였다. 미국의 막대한 경상적자를 중국 등 이머징마켓이 경상흑자로 향유하는 국가간, 지역간 불균형이 궁극적으로 세계경제 성장을 왜곡, 이를 보정하는 과정에서 큰 충격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것이 우려의 요지였다.

그리고 이러한 우려가 여전히 상존한 가운데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가 터졌고, '잘 만들어진 세계화'가 세계경제를 구석으로 몰아넣고 있다.

과연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을까?


글로벌 임밸런스의 기준축인 미국에 대비해 최근 중국에 대한 우려와 기대가 공존하고 있다. 어떤 이는 '향후 세계경제질서는 팍스 아메리카나와 팍스 시니카 양대 축의 힘 겨루기 구도로 이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팍스 시니카(Pax Sinica)는 미국 중심의 세계경제구도가 중국 중심의 국제경제질서로 바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중국사람들이 좋아하는 '중화주의'를 말한다.

세계의 조사분석기관들은 2030년에는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고, 더 나아가 2040년이 되면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적, 군사적으로도 우위를 점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 중국의 변화를 보고 있자면 과연 30년 안에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당사는 중국경제가 본격적으로 꺾이는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지만 2007년을 정점으로 성장률이 둔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올해 이후 중국이 안정적이고 완만한 성장을 지속할 것이라는 판단이지만, 과연 세계 경상 GDP의 1/3을 차지하는 미국을 수십년 내에 추월할 지는 아직 의문이 남아있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레스터 서로우(Lester C. Thurow) 교수는 "중국이 미국을 초월하려면 다음 세기에 가야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중국정부의 통계가 상당부분 엉터리기 때문에 중국경제의 10% 성장은 거짓이라는 것이다.

중국경제의 70%를 점하고 있는 농촌경제는 최근 전혀 성장하지 못했는데, 중국경제가 10% 성장했다는 것은 중국경제의 30%를 점하는 도시경제가 매년 33% 성장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중국 도시경제가 아무리 빠르게 성장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33% 성장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 재미난 근거로 전력소모량을 들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력소모량의 증가율은 GDP성장률보다 높다. 대부분의 생산활동에 전력을 사용하는데, 전력의 낭비요소와 생산효율이 낮아지는 문제로 인해 경제성장률이 전력소모량 증가율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동안 세계적으로 성장률이 가장 빠른 12개 경제구역의 GDP성장률은 전력소모량 증가율의 45%에 지나지 않았다. 일본이 가파른 성장을 하던 1970년대 초에도 일본의 GDP성장률은 전력소모량 증가율의 60%였으며, 이것이 전세계 산업화국가의 최고 기록이다. 그런데 중국의 GDP성장률이 전력사용량 증가율보다 높다는 것이다. 즉,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디커플링, 세계화 속에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

서로우 교수는 중국 전력소모량 증가율을 가지고 중국 GDP성장률을 계산해본 결과, 중국의 GDP성장률은 4.5%(12개 급성장한 경제구역의 평균치)와 6%(일본의 전세계 최고기록) 사이에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중국이 미국의 대공황과 같은 경제위기를 만나지 않고 통화팽창의 영향을 제거해 4%의 경제성장률을 100년간 유지한다면 세계경제사상 가장 높은 장기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다.

미국은 지난 50년 동안 3%의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는데, 만약 두 나라가 100년 동안 지속적으로 성장한다면(중국 4%, 미국 3%) 2100년 중국의 개인GDP는 약 4만 달러, 미국은 65만 달러에 달한다. 결국 향후 100년간 중국이 미국을 못 따라잡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지금 우리의 눈과 귀는 미국과 중국에 쏠려 있다. 최근 디커플링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부쩍 늘고 있다. 미국과의 동조화를 접고 이제는 중국 등 이머징마켓의 성장력에 힘입어 경제와 증시가 차별적인 행보를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세계경제 성장과 세계화의 뿌리에는 미국이 있다. 최근 한국증시가 중국의 성장에 힘입은 바가 크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대체할 수는 없다. 중국의 단기 급성장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에서 아직까지 세계경제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경제가 침체에 빠질 경우 디커플링 논리도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휘청거리는 미국경제, 우리가 그 행보를 예의 깊게 주시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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