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이 불타 붕괴된 것은 겉으로 보기에 평범한 우리의 이웃에 의한 인란(隣亂)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무섭게 한다. 임진왜란(倭亂)은 물론 병자호란(胡亂)을 꿋꿋이 버텨내고 한국전쟁(同亂)마저도 이겨낸 숭례문이 힘없고 한 많은 한 노인에 의해 허무하게 사라졌다는 사실이 우리의 할말을 앗아 간다. 일본인과 여진족에 의한 외침(外侵)과 골육상쟁의 내침(內侵)보다도 한 병(1.5ℓ)의 시너와 라이터 1개가 더 강력했다는 사실이 우리를 전율하게 한다.
‘고도의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해 정보화 사회라고 불리는 21세기는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는 빅 브라더를 걱정해야 한다’는 상식을 뒤엎고, 우리의 옆에 있는 이웃을 더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이 우리를 마음 아프게 한다. 핵폭탄을 대기권에서 요격할 수 있는 최첨단 무기보다 죽음을 각오한 사람들이 월드트레이드센터를 한방에 날려 보냈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던 것이 우리를 두렵게 한다.
숭례문의 붕괴는 인란(隣亂)이 일어날 수 있음을 예고했던 수많은 사인들을 무시한 결과라는 점에서 우리를 채찍질한다. 이웃을 사랑하고 따뜻하게 대접하는 연민(憐憫)의 마음을 갖지 못하고 그들과의 벽을 높여온 우리들의 마음 없음을 부끄럽게 한다. 잘못은 남의 탓으로 돌리고 내 것은 하나라도 더 챙기려고 하는 우리의 탐욕을 죄스럽게 한다.
인란(隣亂)으로 무너진 숭례문에 조사를 받치고 조화를 올리는 것으로 우리의 죄스러움이 씻어지기를 바라는 얄팎한 마음이 우리를 얄밉게 한다. 숭례문 붕괴가 모두 네 탓이라고 발뺌하고 전가하는 무책임이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숭례문 붕괴 같은 인란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사후약방문일지언정 확실한 방문(方文)을 마련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우리의 자화상은 우리를 참혹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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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슬픔과 안타까움과 우울과 참혹 등이 모두 합해 내일 어떤 인란(隣亂)이 일어날지 걱정하게 하는 현실이 우리를 답답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