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숭례문 화재 붕괴, 더 큰 재난 예고?

홍찬선 경제부장 2008.02.11 11:35
글자크기

숭례문 붕괴와 하인리히 법칙

[광화문]숭례문 화재 붕괴, 더 큰 재난 예고?


숭례문이 610년 만에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현장에서 추위에 떨며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깝게 지켜보던 시민들은 물론 TV 화면을 통해 속히 진화되기를 원하던 많은 국민들의 바람을 숯덩이로 바꿔놓은 채 '쿵!'하고 내려앉았다.

남대문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숭례문의 붕괴는 한국인의 자존심도 함께 무너뜨리는 참극이다. 숭례문은 국보1호로서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오랜 기간 동안 배달민족과 애환을 함께 하며 국난을 극복해온 바탕이었기 때문이다.



숭례문 화재 붕괴는 한국인 자존심을 무너뜨린 것

숭례문은 조선 태조4년인 1395년 짓기 시작해 태조 7년인 1398년 완성됐다. 이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및 한국전쟁 등 수많은 전란에도 600년 이상 위용을 자랑하며 한국인의 긍지를 지켜왔다. 그러던 숭례문이 태평성대라고 구가되는 시기의 설날 연휴 끝자락에, 그것도 정보화 사회의 최첨단에서 극히 원시적인 방식에 의해 어이없이 불타 무너진 것이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것처럼 숭례문은 그렇게 원통하게 무너져 내렸지만, 우리를 더 화나게 하는 것은 충분히 지킬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눈 멀쩡하게 뜬 채로 숭례문을 화마(火魔)에 희생되도록 만들었다는 점이다.

불이 난 사실이 발견된 뒤 2시간 이상 동안 초기에 불길을 잡지 못함으로써 억울하게 숭례문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숭례문은 서까래와 기와 사이에 적심이 위치하는 한식 구조물의 특성상 냉각수를 뿌려도 물이 잘 스며들지 않아 진화작업이 더디게 진행됐다"는 게 소방책임자들의 변명 같은 설명이다. 적심은 지붕의 기와 안쪽에 설치된 목재 구조물을 말한다.

하지만 숭례문의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사실은 어제 화재 때 비로소 알려진 게 아니라 만들어졌을 때부터 그랬다. 따라서 그런 한옥 구조물에 화재가 발생할 경우엔 어떻게 진화해야 한다는 것쯤은 당연히 사전에 숙지하고 훈련함으로써, 실제로 불이 났을 때는 그런 훈련절차에 따라 진화에 나섰어야 하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방차가 130여대나 출동해 그저 찬물만 뿌려댔으니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숭례문 붕괴, 국가의 위기관리능력 낙제점이라는 사실 드러낸 것

숭례문이 불에 타 붕괴되자 여러 가지 꼴불견들이 벌어지고 있다. 문화재관리청과 소방방재청 및 서울시 중구 등 해당 관청들은 쏟아지는 비난 여론을 피하기 위해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고, 정치인들은 가뜩이나 어수선한 현장을 찾아 뒷수습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언론은 ‘예고된 인재(人災)였다며 속죄양 찾기에 분주하다.

숭례문 붕괴는 한국의 위기관리능력이 낙제점이라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불은 나지 않아야 하며 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방화(放火)이든 실화(失火)이든) 불은 나게 마련이다. 문제는 불이 났을 때 초기에 진화함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국가의 위기관리능력이다.

위기관리능력은 통제(Governance) 시스템을 확고히 갖추고 항상 훈련을 해야 길러진다. 이런 작업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진행돼야 하는 것으로,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최고 국정책임자가 항상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챙기지 않으면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속성을 갖고 있다. 평소에 준비하지 않으면 위기가 닥쳤을 때 우왕좌왕하게 되고,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고 일을 그르치게 된다.

숭례문 붕괴, 하인리히법칙이 적용되지 않도록 해야

산업재해를 연구했던 하인리히는 ‘1-29-300’이라는 하인리히 법칙을 만들어 냈다. 큰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중규모의 사고가 29건 일어나고, 그전에 사소한 사고 300건 이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즉 숭례문 화재 붕괴 같은 큰 사고가 일어나려면 그것을 예고할 수 있는 수많은 사고가 있었는데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숭례문은 무너졌다는 것이다.

하인리히 법칙에 따를 때 숭례문 붕괴는 ‘한 개의 대형사고’일까, 아니면 ‘29개의 중형 사고’일까. 그것도 아니면 ‘300개의 조그만 사고’일까. 지난해 말에 일어났던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와 경기도 이천의 냉동물류창고 화재폭발사고, 삼성비자금과 김경준 특검, 서브프라임 문제와 원유가 상승, 밀가루 값 상승에 따른 생활물가 급등 및 주가 급락 등등 …. 사건사고 뿐만이 아니라 경제도 점차 어려운 상황으로 빠지고 있는 양상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은 이미 늦기는 했지만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은 일이다. 숭례문 붕괴가 ‘한 개의 큰 사고’에 머물도록 위기관리능력을 확실히 갖추어야 한다. 그것이 지금 숭례문 붕괴의 책임자를 가려내 벌주는 속죄양 찾기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다. 숭례문 붕괴가 ‘29개 사고’에 속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우리의 가슴을 지금보다 훨씬 더 큰 숯덩이로 만드는 더 큰 참사(慘事)를 예고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