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클릭]방카쉬랑스의 '갑'과 '을'

머니투데이 김성희 기자 2007.09.17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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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을 통해 보험상품에 가입한 고객 중 22%가 은행 대출 때문에 가입했다는 생명·손해보험협회의 설문결과 발표가 있었던 지난 6일 저녁.

보험사 방카쉬랑스 담당자들은 모 은행 방카쉬랑스 담당자의 호출을 받았습니다. 보험업계에서는 대형사로 불리는 이들 보험사의 방카 담당자들은 "왜 이런 자료를 냈느냐"는 호통을 묵묵히 견딜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현재 보험업계는 내년 4월 시행 예정인 4단계 방카쉬랑스 확대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보험대리점과 설계사들은 여의도와 과천에서 대규모 집회를 통해 방카쉬랑스 확대 시행 철회를 요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다보니 보험사 방카 담당자들은 가시방석입니다. 언론에서 보험업계발로 '방카쉬랑스 확대 반대' 기사가 나가기라도 하면 좌불안석이 된다고 합니다. 은행 쪽에서 시비를 걸어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한 보험사 방카 담당자는 "더러워서 못해 먹겠다"는 말로 자신들의 처지를 표현하더군요. 무슨 말인가 했더니 퇴근 후 집에서 쉬고 있는데 모 은행의 방카 담당자가 호출을 했답니다. 허겁지겁 나가 술값을 계산하고 돌아오는데 비애가 느껴졌다는 겁니다.



기자가 놀라워하자 모든 은행이 그런 건 아니고 유독 그런 은행이 2곳 정도 된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보험사 입장에서는 이곳 은행에서 10억원의 매출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이니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거절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은행에서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방카쉬랑스. 보험사 입장에서 보면 방카쉬랑스는 설계사나 대리점, 콜센터와 같은 판매채널의 일종일 뿐입니다. 그들이 자사의 보험상품을 판매하면 보험사는 해당 은행에 정해진 수수료를 주는 형태이니까요.

그러나 방카쉬랑스 제휴를 한 보험사와 은행의 관계를 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집니다. 한마디로 '갑'과 '을'이 바뀐건데요. 보험사수에 비해 은행수가 훨씬 적고, 자산규모 면에서 보험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은행규모가 크다보니 보험사들이 '을'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또다른 보험사의 관계자는 "은행 쪽의 비위를 잘 맞춰야 한다"면서 "비위에 안맞으면 제휴를 파기하겠다며 협박한다"고 한숨을 쉬더군요. 그는 "그만큼 은행의 영향력은 막강하다"며 "만일 보장성보험이나 자동차보험으로 방카쉬랑스가 확대되면 보험사는 완전히 은행과 종속관계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소비자들에게 보다 편리하고 저렴한 가격으로 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도입된 방카쉬랑스. 그러나 소비자에게 돌아간 혜택보다는 은행에 돌아간 혜택이 더 많다는 느낌이 들어 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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