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술을 샘물에 부어버린 이유

하민회 이미지21 대표 2007.08.21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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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리더십]비즈니스에도 '액팅'(acting)이 필요하다

귀한 술을 샘물에 부어버린 이유


얼마 전 스타 PD출신 CEO 한 분이 등장했다. 주철환 신임 OBS 사장이다. MBC 예능국PD를 거쳐 이화여대에서 7년간 교수로 지내오다 사장공모추천제를 통해 경영인으로 새출발하는 그는 이른바 21세기 감성형 리더의 전형이다.

튀는 아이디어와 신선한 시도로 제작한 프로그램들은 항상 세간의 관심을 끌었고, 천진한 미소와 동안(童顔)으로 소박한 친근감을 준다. 글도 잘 쓰고 말도 잘 하는 명랑쾌활 리더십의 소유자다. 물론 그는 자유분방한 머리와 가슴에 어울리게 타이를 매지 않은 캐주얼 차림을 즐긴다.



그런 그가 기자회견이나 간담회에는 반드시 넥타이를 맨 단정한 정장차림으로 나타난다. 경인방송(i-TV)시절 경영난으로 방송국 문을 닫아야 했던 좌절을 겪었던 OBS의 개국을 지휘하는 수장으로서 야무지고 당찬 각오를 밝히는 옷차림 답다. "역시!!" 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비즈니스 액팅'(Business acting) 이란 말이 있다. 굳이 해석하자면 '비즈니스에 필요하거나 도움이 되는 일련의 의도된 행동' 에 해당된다. 마치 무대에 서는 배우들이 관객에게 자신의 캐릭터를 분명히 전달하기 위해 옷차림이나 목소리, 바디랭귀지 등을 유니크하게 연출하듯 비즈니스 관계에 있어서도 보다 분명한 의지표명을 전하기 위해서는 차림이나 음성, 행위를 통한 표현이 필요하다. 단순한 언어적 메시지보다 비언어적이고 부수적인 요소들이 가미된 메시지가 한결 강력한 전달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액팅 중 가장 손쉽게 많이 쓰이는 것이 의상활용이다. 때와 장소와 상황에 적절한 차림을 통해 보다 인상적인 자기연출을 할 수 있을 뿐 더러 무의식적인 분위기를 이끄는데도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크라운해태의 윤영달 회장은 30~40대 젊은 후배 CEO들과의 한 대담자리에 청바지에 푸른 셔츠 차림으로 나섰다. 환갑을 넘긴 선배 CEO의 청년 같은 옷차림은 격의 없고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풀어가는 촉매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단추가 없는 검정색 터틀넥에 청바지를 즐겨 입는다. 미니멀리즘 신봉자임을 보여주는 차림이다. IBM의 CEO인 루 거스너는 푸른셔츠를 통해 쓸데없는 격식과 권위를 버리자는 메시지를 전사적으로 전달해 조직혁신의 출발점으로 삼기도 했다.
 
비즈니스 액팅은 리더십과도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이미 예로부터 리더가 갖추어야 할 역량 중 하나였다. 중국 감숙성에 있는 도시 주천(酒泉)의 유래는 비즈니스 액팅을 통한 리더십의 발휘를 보여주는 사례다.

한 무제 때 곽거병이라는 장군이 서역정벌에 나섰다. 처음엔 하늘을 찌를 듯 했던 군사들의 사기도 기약 없는 전쟁 앞에서 지치고 무너져 서서히 오합지졸이 되어갔다. 고민하던 곽거병 장군에게 때 마침 황제로부터 하사주 한 병이 도착했다. 그는 군사들을 모이게 한 다음 하사주를 높이 들고 외쳤다.

"황제께서 우리에게 격려의 하사주를 내리셨다. 함께 마시며 힘을 내자." 그리고는 오아시스에 하사주 한 병을 쏟아부었다. 한 병의 술로 샘 전체를 황제의 하사품으로 만들어 부하들을 감동시킨 곽거병 장군의 행동이야말로 예상치 못한 신선하고 근사한 비즈니스 액팅임에 틀림없었다.
 
리더가 온 몸으로 보여주는 감동 혹은 설득, 공감. 이를 통한 결집. 리더에게 비즈니스 액팅이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리더의 일거수 일투족은 비록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를 따르는 이들에게는 '의미'가 된다. 리더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간에 추종자들은 보여지는 리더의 모습을 의도된 행동으로 받아들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리더는 오해 없이 본의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언어적 비언어적 모든 요소를 담은 적극적인 의사소통에 나서야 한다. 옷차림으로, 표정으로 말과 행동으로 공감과 동조를 얻어내야 한다.
 
비즈니스 액팅은 쇼가 아니다. 전혀 하지 않았던 행동이나 차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역지사지를 통해 가장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행동이나 차림을 선별해 수행하는 일이다. 비즈니스 액팅을 잘 하는 리더야 말로 자기 역할과 그 중요성을 정확히 알고 있고 충실히 수행하는, 추종자를 배려할 줄 아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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