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형래 '주류' 영화인으로 거듭 났으면

머니투데이 박창욱 기자 2007.08.12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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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의 성공학]36번째 '디 워'..심형래 CEO 역할 전념해야

심형래 '주류' 영화인으로 거듭 났으면


1. 최근 영화 '디 워(D-War)'가 단연 화제입니다. 일단 단기간에 엄청난 관객을 동원한 흥행성적이 그렇습니다. 평론가들과 누리꾼들 사이에 벌어지는 다툼의 열기도 뜨겁습니다.

원래 이 '영화속의 성공학' 코너는 영화 속 등장인물이 보여주는 이야기에서 삶의 지혜를 찾아보자는 취지를 갖고 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디 워'는 이무기가 주인공인 영화입니다. 당연히 '디 워'는 본 코너에서는 다룰 성격의 영화가 아닙니다.



하지만 다소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되는 '디 워'와 관련한 사회 현상을 바라보면서, 정말로 따져 볼 문제가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기자는 2003년 여름 심형래 영구아트 대표를 만나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감독 심형래가 아닌 문화콘텐츠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심형래를 만난 겁니다) 당시 그는 '용가리'의 실패를 딛고 일어나 차기작 '디 워'의 컴퓨터 그래픽(CG)을 다듬으며 투자처를 찾는 데 열심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 특히 충무로 주류 영화계에 대한 아쉬움과 자신이 겪은 어려움, 앞으로 꿈에 대해 털어놓았습니다. 인터뷰 이후 저는 그를 마음으로나마 응원하는 팬이 됐습니다. 이후 4년이 지났습니다. 드디어 그의 재기작(?)인 '디 워'를 봤습니다. 솔직한 느낌을 말씀드리자면…매우 실망했습니다.

제가 실망했던 건 평론가들의 비난을 받는 작품성때문만이 아닙니다. 영화 전반에서 느낄 수 있었던 심형래 감독의 해묵은 '콤플렉스' 때문입니다. 훨씬 더 평탄한 길을 놔두고, 나름의 고집과 지난 세월의 한 때문에 더 어려운(?) 길을 가고 있는 그가 안타까웠습니다.

3. 영국의 정치가 디즈레일리는 "사람들이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길로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꾸준히 나아간다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심형래 대표는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인물입니다.


심형래 대표는 할리우드만이 가진 고도의 CG기술을 손에 넣기 위해 오랫동안 독자적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사람이 들어가는 공룡인형에서 시작해, 밤에만 움직이는 '용가리'를 만들었고, 이젠 낮에도 돌아다니는 '이무기'를 창조했습니다. 누구에게도 배우지 않고 스스로 말입니다.

할리우드를 완전히 넘어서려면 아직도 갈길이 멀었지만, 그래도 그는 이제 CG분야에서 한국 영화계의 당당한 '인프라'로 자리잡게 됐습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할리우드를 넘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심 대표는 보여줬습니다. 미학자이자 평론가인 진중권씨는 "300억원 들인 영화에 무슨 국운이라도 달렸나"라고 비판했지만, 문화콘텐츠 산업의 측면에서 보면 그리 우습게 보고 말 문제는 결코 아닙니다.

션 화이트는 책 '부의 이동'에서 부의 역사를 이끈 결정적 요소로 '정보가격의 하락'을 꼽고 있습니다. 컴퓨터, 인터넷 등이 촉발한 정보가격의 하락으로 인해 촉발된 산업환경의 변화가 부를 이동시킨다는 설명입니다. 즉 특정 정보를 일부에서 독점할 수 없게 되면서, 일반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자만이 부를 창출할 수 있다는 얘기지요.

현재 CG를 이용한 SF영화나 액션영화는 할리우드가 대부분 독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진행형인 심 대표의 시도는 문화적 장벽없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잘 팔리며, 게임이나 캐릭터산업 등 파급효과가 큰 이 분야의 독점구조를 깨고자 하는 도전입니다. 이는 심 대표 개인이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한번 도전해 볼 만한 과제입니다.

4. 그렇다면 심 대표는 더 이상 직접 영화감독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감독 역할을 할 시간에 CG를 더욱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키는 데 힘써야 합니다. CG에 대한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CG를 멋지게 살려 이야기에 재미있게 녹일 수 있는 역량있는 전문 감독을 발굴해 키워야 합니다.

또,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체득한 세계 시장에 대한 마케팅 전략을 더욱 더 정교하게 다듬어야 합니다. 굳이 평론가들에게 욕을 먹는 감독이 아니더라도, 심 대표는 문화콘텐츠 기업의 최고기술책임자(CTO)와 최고마케팅책임자(CMO) 및 CEO로서 할 일이 훨씬 더 많은 사람입니다. 심형래씨는 감독으로서보다는 창조적인 테크노 CEO로서 더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심 대표는 이미 수많은 투자자들이 낸 엄청난 돈을 썼습니다. 따라서 한국 문화콘텐츠 산업에 대해 그만큼의 책임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결코 영화감독에 대한 개인적인 열정만을 고집해선 안 됩니다. 기존 주류 충무로 영화인들에 대한 지난 콤플렉스를 버리고, 그들이 던졌던 조소를 너그럽게 무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더 이상 심형래는 한국 영화계의 '비주류'가 아닙니다.

CG와 마케팅에서 그가 가진 능력과 좀 더 넓은 마음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더 끌어들여 한국 영화계의 새로운 주류로 거듭나야 합니다. 심 대표가 자신의 한을 비워내 감독직을 고집하지 않았다면, 모든 걸 혼자 다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면, 영화 '디 워'는 지금 개봉된 것보다 훨씬 높은 완성도를 지난 SF영화가 됐을지도 모릅니다.

5. 여러 차례 인터뷰에서 심형래 대표가 밝힌 것처럼, 그가 한을 가지게 된 1차적인 책임은 분명 우리 사회에 있습니다. 코미디언 출신이라는 점, 조악한 과거 필모그래피에 대한 편견만으로 사회는 그를 멋대로 재단했습니다. 때문에 그가 애국심이나 동정심에 의존하는 논란 마케팅의 중심에 서게 된 데에는 어쩔수 없는 측면이 분명 있습니다.

또 보다 나은 결과를 향하는 과정에 있었던 그를 성급하게 세상밖으로 끌어내 '신지식인' 운운하며 프로파겐다에 이용했던 정치권의 책임도 큽니다. 여기에 동조해 (진중권씨의 표현에 따르면) '애국 깡패' 노릇을 하고 있는 일부 누리꾼들도 결코 그의 승천(?)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제 더 이상 불필요한 논란을 벌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꿋꿋히 한 길만을 걸어온 문화콘텐츠 사업가 심형래씨가 자신만의 길을 앞으로도 계속 걸어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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