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면 모든 게 용서된다(?)

머니투데이 박창욱 기자 2007.04.08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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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의 성공학]33번째 글..'미녀는 괴로워'

1. 백범 김구 선생은 '백범 일지'에서 논어의 구절을 인용하며 "얼굴좋은 사람보다는 마음 좋은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외양보다는 내적 수양을 통해 조국 독립에 기여하겠다는 결심일테지요.

그러나 이같이 훌륭한 마음자세도 요즘 세상과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미지 중심인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내면만큼이나 외모 가꾸기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아니 외모에 훨씬 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



돌아가신 이주일 선생이나 옥동자는 몇 안 되는 예외일 뿐입니다. 요즘 세상에서 '못 생겨서 덕 보는' 경우는 일부 개그맨을 제외하곤 거의 없습니다. 일단 잘 생기고 봐야 되는 세상입니다. 타고난 게 안 되면 의학의 힘이라도 빌어야 하지요.

꼭 여자들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이원복 교수의 저서 '현대문명 진단' 시리즈엔 미국의 매력연구가인 로버트 퀸의 조사결과가 소개돼 있습니다. 조사에 따르면 잘 생기고 스타일 좋은 남성들은 같은 나이대의 못 생긴 남성들보다 평균 25%나 많은 봉급을 받고 있다네요. 쩝...



이렇듯 외모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것을 '뷰티즘(Beautism)'이라고 합니다. 뷰티즘은 일종의 인종차별주의이자, 섹스주의입니다. 그러나 지금 시대는 도덕적인 기준과는 별개로 '아름다움은 선이요, 추함은 악'인 그런 세상인 듯 합니다.

예쁘면 모든 게 용서된다(?)


2. 영화 '미녀는 괴로워'는 '700만 관객 동원'이라는 흥행성적에서 보듯, 외모 중심인 요즘의 세태를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일본 원작 만화의 묘미를 영화의 방식으로 잘 버무려낸 이 작품은 남성중심적 사고와 외모지상주의가 녹아 있는 자본주의의 구조를 풍자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한편에선 성형수술을 미화한다는 다소 1차원적인(?) 비아냥도 받았지요. 그러나 이 영화엔 사람들이 간과하기 쉬운 중요한 시사점 한 가지가 더 숨어 있습니다. 참, 이 영화에 관해 이야기하기에 이 영화와 관련이 있는 책 한 권을 먼저 소개하겠습니다.

책 제목은 '위대한 기업, 로마에서 배운다'입니다. 유명한 컨설팅 회사의 임원이 쓴 책입니다. 개인적으로 역사를 좋아해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책은 로마제국이 당시 세계를 제패하게 된 구조를 분석해 현대의 조직들이 배워야 할 점을 적고 있습니다.

책에 따르면 로마는 합리적 분업구조를 만들어 핵심적인 기능도 아웃소싱했습니다. 로마는 강대국이 된 이후에도 모든 것을 독점하지 않았습니다. 학문에서 기술이나 교육제도까지 로마에 도움이 되는 것은 모두 받아들였습니다.

로마에 정복된 그리스의 예술 철학 수학등이 로마에 들어오자, 로마의 한 정치가(大 카토)는 "정복된 그리스가 로마를 정복했다"고 한탄할 정도였지요. 하지만 이같이 통 큰 개방성으로 인해 비로마인이 로마에 들어오면 더 로마인 답게 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로마는 단 한 가지 일만큼은 결코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직접 해결했습니다. 다름 아닌 군사력입니다. 로마는 제국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용병을 쓰지 않고 시민군 체제로 군사력을 확보했습니다.

돈 받고 싸워주는 용병과 달리, 시민군은 자신의 사회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정복하지 않으면 정복당하는 고대 사회에서 생존을 좌우하는 핵심 경쟁력인 군사력만큼은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직접 해결했던 겁니다. 반대로 제국 후기에는 용병을 쓰면서 결국 멸망의 길을 걸었습니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는 바로 이 책이 제시하는 것과 비슷한 시사점이 숨겨져 있습니다.

3. 영화의 주인공 강한나는 뚱뚱한 외모때문에 무대에 나서지 못하고 섹시한 립싱크 가수 '아미'의 노래를 대신 불러야 합니다. 그는 외모로 인한 여러 가지 충격때문에 전신수술을 받기 위해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때문에 아미는 립싱크 가수인 강한나가 사라지자, 새로운 음반을 내지 못하고 연기자로만 활동해야 하는 처지가 됩니다. 하지만 재능없이 섹시한 외모만을 내세우는 그녀가 연기라고 제대로 해낼리가 없죠. 이러저런 악평에 시달릴 뿐입니다.

아미의 섹시한 외모는 강한나의 멋진 목소리를 빌릴 수 있을 때만 그 스타성을 발휘했던 것이었죠. 가수로서 핵심 역량은 남에게 빌리면서, 허상인 이미지로만 승부한 탓입니다.

이미지는 가상의 현실(Virtual Reality, 버추얼 리얼리티)일 뿐입니다. 가상의 세계는 실제가 아닙니다. 실제하지 않는 허상은 결코 오래갈 수 없습니다. 또, 링컨의 말처럼 세상의 전부를 잠깐 속일 순 있지만, 결코 세상을 영원히 속일 순 없는 노릇이지요.

반면, 한나는 전신성형끝에 미녀가수 '제니'로 다시 태어납니다. 가수로서 핵심역량인 음악성이 있었기에, 의학의 힘을 빌어 그 역량을 빛내줄 미모까지 갖추자 세상의 인정을 받게 되지요.

(물론 이는 의학적으로 가능한 일도 아니고, 성형에 대한 사회적 이중잣대라는 논란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평론가들이 이미 논의했던 것이므로 이 글에선 일단 넘어가기로 하죠)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을 잘 하기 위한 핵심역량을 확실히 갖춰야 합니다. 예전 어느 전직 대통령은 "머리는 빌릴 수 있지만, 건강을 빌릴 수 없다"고 했지요. 물론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겠지만, 리더로서 제대로 된 비전과 철학없이 국가를 운영하다 모두 알다시피 결국 '국가 부도'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됐었죠.

사회생활을 하면서 우리를 좌절하게 하는 것은 사실 외모 뿐만이 아닙니다. 학벌이나 연고, 부패 등에 따른 이런 저런 부조리에 맞닦뜨리게 됩니다. 이 모두는 분명 무시할 수 없는 장벽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분야에 필요한 핵심 역량만 확실히 갖추고 있다면, 모두 극복할 수 있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자신의 굳건한 실력입니다.

“언제나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십시오. 일이 맡겨지면 즐겁게 하세요. 그런 모습을 세상의 누군가는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두번 세번 자꾸 해내다보면 결국 세상의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강석진 전 GE코리아 회장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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