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토로를 잊지 마세요"

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2007.07.22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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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명부 일본 우토로 주민회 부회장의 '마지막 희망 순례'

↑엄명부 우토로 주민회 부회장<br>
ⓒ황국상 기자↑엄명부 우토로 주민회 부회장
ⓒ황국상 기자


"일본 정부가 우리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않는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어요. 그러나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약속했던 한국 정부가 다시 우리를 외면하려 하고 있습니다. 실망스럽고 가슴이 먹먹(하가요이)하네요."

그는 일본말로 '하가요이'라고 말하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우토로 주민회의 엄명부(54ㆍ사진) 부회장. 그의 이름은 한국어였지만, 그는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했다. 지긋이 눈을 내리감고 이야기하는 그의 얼굴엔 주름이 깊게 패였다.



지난 1941년 교토비행장 건설에 동원된 조선인 1300여명이 일본 교토부 우토로에 정착하면서 우토로 마을이 생겨났다. 일본 정부는 미처 고국에 돌아가지 못한 이들을 방치했지만 주민들은 황무지였던 우토로를 엄연한 한 마을로 일궈냈다.

그러던 중 땅의 소유권자인 부동산회사 서일본식산이 '우토로 땅을 사거나 떠나라'며 압박하고 나섰다. 주민들은 지난 60여년 간 다져온 삶의 터전을 지키고자 힘겨운 싸움을 계속해 왔다.



지난 2005년부터 주민회는 우토로 땅값 7억엔(약 52억3000만원)을 마련하고자 모금을 시작했다. 약 5억원을 모았지만 땅값에는 턱없이 못 미친다.

당시 외교통상부 차관이던 유명환 주일 대사는 주일 대사관을 찾은 엄 부회장과 주민회와 4시간 가량의 환담을 나누며 "더 이상 피케팅 등 캠페인을 할 필요는 없다"며 변호사 선임 주선, 땅 매입 비용 지원 등 정부차원의 지원을 약속했다.

재일한국인 2세로 태어나 그 때까지 조국의 따뜻한 정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다는 엄 부회장은 "유 대사가 너무 든든했고 그와 만난 건 잊을 수 없을 만큼 큰 감격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달 서일본식산으로부터 '7월31일'이라는 최종기한을 통보받고서 마지막 지원을 호소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엄 부회장 등 주민회는 '정부가 우토로 주민을 지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차가운 한 마디만 전해들었을 뿐이었다.

"외교부는 우토로 외에도 힘겹게 사는 동포들이 많이 있어서 우토로만 지원해주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했습니다. 우토로도 도와주지 않고 앞으로 그 어떤 동포도 안 돕는 것, 그게 외교부가 말하는 형평성인 건가요?"

그의 목소리는 건조하고 담담했다. 일본은 그들을 '이방인'으로 대우했고 한국인들은 그저 '반 쪽발이'로 여길 뿐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조국의 따뜻한 정을 느끼게 했던 한국 정부의 태도 변화는 마음 아팠다.

"지원금을 타내려고 온 것이 아니에요. 돈 이외에도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많습니다. 정부 관계자나 전문가들이 모여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의견을 구하고 싶어요. 여러분들의 관심이 우토로 주민에게는 큰 힘이 된답니다."

엄 부회장 등 주민회 대표들은 22일 오후 6시 서울 광화문 동아빌딩 앞에서 '마지막 희망모임' 문화제를 개최, 한국 정부에 전하는 청원서를 발표한다.

또 23일에는 '우토로 살리기'를 위한 기자회견을 가진 후 대통령, 외교부 장관, 국회의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청와대, 외교부, 국회에 전달할 예정이다. 지금도 우토로엔 65세대 201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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