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삼성-현대차의 '위법 함정'

머니투데이 성화용 산업부 부장대우 2007.06.01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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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4년 여름 한 외국인 컨설턴트로부터 "삼성이 '위법 함정(illegality trap)'에 빠져 있다"는 말을 들었다. 삼성이 상당 기간 '실정법'과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하며, 이로 인한 '위험'이 다른 경영 위험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주장이었다. 당시 삼성은 6건의 소송에 걸려있었다. 그 해 제기된 것만 3건이었다.

삼성의 한계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이기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오너십과 지배구조에 관련된 문제가 많아 길게 끌면 꽤나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삼성은 그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흘 전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 의혹 사건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발행절차의 불법성을 적시하고 관련자들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삼성은 즉각 상고 방침을 밝혔지만 속타는 시간이 그만큼 길어질 뿐이다. 여론은 삼성편이 아니다. 검찰과 대법원도 내심 난처해 하고 있을 것이다.

마침 현대차 비자금 사건 결심공판도 다음주로 다가왔다. '위법 함정'에 빠진 건 현대차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비자금이 계열사의 노무관리와 해외사업, 국가적 행사 지원에 주로 사용됐다는 점이 양형에 고려됐다고는 하지만 칠순의 노 경영자는 두달동안 수감생활을 해야 했다.



국민들의 법정서는 야속할 정도로 매몰차다. 그래서 정몽구 회장과 현대차그룹은 2심 재판부의 관용을 기대하면서도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해외 출장길 마다 여수 엑스포 유치를 위해 발벗고 뛰는 정회장에게서 속죄의 몸짓이 읽혀 안스럽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자승자박이라고들 한다. 함정에 빠진 건 누가 밀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욕심 때문이라고들 한다. 그래서 '일벌백계'를 얘기한다.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으려면 확실하게 매듭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피고'들도 애써 참고 있는 항변이 있다. 과연 '위법 함정'에 빠져든 건 전적으로 기업과 기업인들만의 책임인가. '위법'과 '적법'의 경계선이 불분명하던 때가 있었다. 편법 전환사채 발행이 하나의 '기법'으로 유행했었고 비자금을 써야할 '어두운 거래'의 상대방들이 있었다. '단죄'가 너무 집요하고 일방적인 것 아닌가.


물론 내심을 공론화할 수는 없다. 그럴수록 사회와의 불화가 깊어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계서열 1, 2위의 대표기업 오너들은 거액을 환원하겠다며 머리를 숙이고 사회의 환심을 살만한 약속들을 꺼내놓았다. 그래도 에버랜드 2심 재판을 보면 분위기가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위법은 위법일 뿐이며, '그들'과 '그들을 제외한 일반'을 철저히 격리해서 보는 이분법. 그 절대 분노 앞에서는 사과나 화해의 몸짓이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사실을 기업들도 뻔히 안다. 그렇다고 싸울수도 없고 포기할 수도 없어 궁여지책과 옹색한 변명들이 되풀이 된다.

그렇게 위법 함정에 빠져 허우적 댄 기간이 삼성은 10년, 현대차는 1년을 훌쩍 넘겼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할지도 확실치 않다.

법원 판결로 단죄가 끝나는 것인지, 그 끝을 지켜보면 속이 시원해질지, 결과로서 두 기업과 우리 경제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계산기를 두드려 보는 것도 이제 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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